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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4.15총선과 갈림길에 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북악산 뻐꾸기가 울 때 들판에는 가라지가 자란다
 
신성대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0/03/26 [13:11]
▲ 신성대 논설위원    

 뻐꾸기는 제 스스로 알을 품지 않지요. 오목눈이새 둥지에 몰래 제 알을 낳아서 같이 품게 하지요. 그러면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미처 부화하지 않은 다른 오목눈이새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혹 먼저 부화한 새끼도 사정없이 밀어내 버립니다. 덩치가 훨씬 커니까요.

 

그리고 저 혼자 어미의 먹이를 다 받아먹어야 겨우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오목눈이 어미새는 제 새끼들을 밀어내 죽인 그 뻐꾸기 새끼를 키우느라 죽을 힘을 다해 벌레를 물어다 바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영락없는 오목눈이새 꼴입니다.

 

 나라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악한 기운이 미세먼지처럼 뒤덮고 있어 사람들이 방향을 못 잡고 이리저리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의는 말라죽어가고 공의가 뿌리째 뽑혀나가고 있습니다.

 

  정직이 조롱당하고 가치는 매몰되고 있습니다. 몰염치와 막무가내 떼쓰기가 판을 치고, 거짓과 선동이 난무하고, 증오와 분노가 양심과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소나 말은 다 잡아 먹고 사냥개들 데리고 농사짓겠다고 온 들판에 풀어놓았습니다. 도처에서 야바위꾼들이 내놓고 천국을 사기분양하며 신성함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온 밭을 뒤덮었습니다. 작물만 밭에서 자라라는 법은 없지요. 잡초가 생명력은 더 질깁니다.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때때로 갈아엎고 김을 매지 않으면 뿌린 대로 거둘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혼탁한 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관하고 방치하며 주인답지 못하게 살아온 우리 개개인 모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광경이 아니지요.

성경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태복음 13:24-30)

 

 함께 뒤섞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때에는 자신이 가라지인지 곡식인지 잘 모르지요. 밭에 심어졌으니 당연히 곡식이겠거니 하겠지요. 그렇게 가라지도 복 받고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누구든 믿음만으로도 신실한 삶을 살았다고 자위할 수 있겠습니다만 과연 하나님도 그렇게 여기실지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기도와 찬양으로 믿음을 증거하고, 봉사한 보답으로 복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영혼까지 구원받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가라지인가요? 곡식인가요?

 

 누구든 지금 이 나라가 도덕적 위기를 겪고 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분명 우리는 도덕을 재무장해야 하는 사회학적인 주기에 들어섰습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존엄성의 길로 되돌아가도록 애써야 할 공동의 책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성취한 자유민주주의에 새로운 도약을 불어넣을 기회입니다. 우리 문화 전반에 대한 섬세하고도 반성적인 성찰을 통해 글로벌 선도적 수준으로 민격(民格)을 높여야 합니다. 훌륭한 양심과 태도적 가치를 가지고 그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대가 우리 민주주의를 믿고, 자신의 시대를 책임지는 적극적인 시민이 되고 싶어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은 것은 공동체 누구나가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요. 그렇지만 현상황은 분명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일단 작은 변화라도 시작되면 뒤이어 다른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누구든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각의 여부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고매한 지성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 시대의 주인입니다. 관례를 바꾸는 것이 지금 꼭 필요합니다. 익숙함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명령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을 해도 봄은 오고 또 총선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밭을 갈아엎고 또 뭔가를 심어야 합니다.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심을까요? 아니면 소출이 많은 신품종을 심을까요? 아예 다른 작물로 바꿔볼까요? 부디 종자 잘 골라 농사 망치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뒤이어 닥칠 경제 공황의 쓰나미가 이미 수평선에서 거대하게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입니다. 도망 갈 곳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맞닥뜨려야 하고 또 이겨나가야겠지요. 우리에겐 나중이 있습니다. 앞 세대가 그랬듯 우리도 뭔가를 해낸 세대로 기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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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6 [13:11]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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