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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조 칼럼] 6.25 전쟁 70주년을 맞으며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나라를 잃게 된다
 
권해조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6/23 [13:33]
▲ 권해조 예비역장성, 한국국방외교협회 고문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땅에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북 간의 대립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6.25 전쟁은 사상자와 전비(戰費)를 보면 세계 역사상 10위권의 큰 전쟁이었다. 그런데도 이 참혹한 전쟁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국민들이 많으며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혀가고 있다.

 

이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으로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3년 1개월 2일간 남북한의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눈 민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삼천리금수강산을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만들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엄청난 피해만 내고 반영구적인 분단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통계에 따르면 127만여 명이 참전한 국군은 13만 7천여 명이 전사하고, 21개국에서 190만여 명이 참전한 유엔군은 4만여 명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민간인 250여만 명의 사상자와 10만여 명의 전쟁고아, 1,000여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또한 많은 개인의 재산과 문화유산을 잃고, 전 국토가 황폐되었다. 북한군도 50여만 명과 중공군 90여만 명이 전사하고 민간이 입은 피해는 얼마인지 기록조차 없을 정도다. 특히 이산가족과 북한에 납치된 국군포로들의 고통과 상처는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아직도 6.25전쟁이 민족해방전쟁의 내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소련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대한 자유민의 투쟁이었으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침략에 대한 민주진영의 대 반격이었다.

 

6.25전쟁은 한반도 공산화를 꿈꾸던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아,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원 아래 북한 김일성이 행동대원으로 불법 남침을 감행한 전쟁이었다.

 

이런 사실는 탈냉전 후 구소련의 외교문서의 공개로 진실이 밝혀졌다. 6.25 전쟁의 남침 공격명령도 소련 고문단 와씰리에프 중장과 뽀스트 니코브 소장이 주동 하에 소련 국적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이 작성하였다.

 

대한민국은 전쟁발발 2년 전인 1948년 8월 15일에 이미 건국되었다. 6.25전쟁은 대한민국이 북한의 불법 기습침략을 저지하기 위하여 국가명운(命運)을 걸고 싸운 총력전이었다. 따라서 6.25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전쟁이었으며 양대 진영 41개국이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그리고 6.25전쟁은 종전(終戰)이 아니고 또 언제 재발할지도 모르는 휴전(休戰)상태이다. 북한은 아직도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휴전 후 남북한은 1972년 7.4공동성명과 2000년 6.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위원장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2007년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2차 정상회담과 10.4 공동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현 정부에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 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공동 목표로 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어 5월 26일 실무형 제4차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리고 9월 18일부터 20일 평양에서 제5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군사적 긴장완화, 비핵화 일정제시, 경제와 민간분야 협력 재개 등 ‘평양공동선언과 9.19 군사합의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6월16일 비무장지역 요새화 등 군사행동을 예고하고,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17일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그리고 최전방 GP에 군대를 다시 주둔시켜 요새화 하고, 향후 ‘서울 불바다’ 보다 더 끔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정부의 특사파견 제안도 거부하고 9.19 남북군사합의서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지금까지의 남북 관계를 대적관계로 바꾸면서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앞으로 북한은 어떤 불장난을 저지를지 모른다.

 

자유월남이 1973년 파리협정 후 미군이 철수할 때 인수받은 최신장비로 잘 무장된 세계 제4위의 군사대국이었다. 그럼에도 미군 철수 후 2년 만에 맨발에 소총으로 무장한 공산월맹군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월남 패망의 교훈을 되새기며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북한의 어떤 도발도 막아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월등한 경제력과 막강한 한미연합군으로 대적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가 갖지 못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언제 핵전쟁의 먹구름이 낄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는 이 땅에 민족을 말살하는 전쟁의 비극은 없어야한다. 만약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위하여 조국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가안보는 국가생존을 보장하는 산소와 같다. 산소가 결핍되면 개인의 생명을 잃게 되듯이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나라를 잃게 된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힘과 의지가 약한 민족과 나라는 패망한다는 진리와 현실을 외면하는 자는 현실로부터 소외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시는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이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한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70년 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역사를 기억하지 않은 자는 그 역사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란 유대인의 경구(警句)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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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3 [13:33]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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