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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열 칼럼] 지평리 전투의 영웅 몽클라르 장군
 
조상열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6/29 [19:20]
▲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문학박사     

지평리 전투의 영웅 몽클라르 장군 
 몇 해 전 남도 여행 중에 김성수 변호사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을 지킨 자유의 전사 –나의 아버지 몽클라르 장군-”이란 책으로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지평사모)>이란 단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평리 전투와 프랑스의 몽클라르 장군을 소개하기 위해 펴낸 책이었다. 

 

원본은 장군의 외동 딸 파비안 몽클라르가 불어로 “MONCLAR”라고 쓴 글이다. 지평리 전투의 영웅 몽클라르 장군의 전기(傳記)는 프랑스에서는 출판되지 못했고, 이를 한국의 지평사모에 의해 2년 여 전에 출판 한 것이다. 

 

역자는 지평사모의 대표 김성수변호사로 김변호사는 광주 서중, 서울 법대출신으로 서울지법 판사를 역임하고 현재 법무법인 아태(亞太) 대표이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하며, 지평사모는 이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인 것이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김변호사가 지평리에 사는 친척으로부터 지평리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평사모를 만들었고 한다.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중공군에 첫 승리를 거둔 전투로 당시 몽클라르 장군과 프랑스 대대 5백명, 미국 23연대 5천5백 명이 중공군 3만 여명을 맞아 대승을 거둔 현장이다. 아군 52명, 중공군 5천명이 전사했고 이 전투를 계기로 유엔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 랄프 몽클라르 중장 (본명 :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사진 출처: http://mnd-nara.tistory.com/806)     ©경기데일리

장군에서 중령으로 - 스스로 계급을 낮추고 한국으로

당시 몽클라르 장군은 1.2차 대전에 참전한 중장 계급의 백전노장이었다. 프랑스군 500명은 대대급으로 중령이 지휘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장군은 스스로 계급을 강등하여 중령으로 한국전에 참전 지휘했는데, “자유를 위해 피 흘리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며 자원했다고 한다.

 

 몽클라르 장군은 1950년 당시 프랑스 유명가수 “에디 피아프”와 배우 “브리지드 바르도” 못지않은 인기를 차지한 프랑스의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신부복 대신 군복을 입었고, 3성 장군인 중장 대신 중령으로 자원 강등하여 한국전에 참전한 자유를 사랑하는 참 군인이었던 것이다. 

 

 6월이면 생각나는 70년대 유명했던 가곡 ‘비목’ 이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 비목은 가사나 곡에 애달픈 사연이 숨겨져 있다. 작사자인 한씨가 60년대 중반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강원도 화천 백암산 비무장지대 초소장으로 군 생활을 할 당시, 주변에 숱하게 널려 있는 시체들과 이름 없는 비목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작사한 것이라 한다. 

 

호국의 달을 되돌아본다.

 [비 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한 소위는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하얀 산목련을 보면서 한국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산화해 갔는가를 느꼈고, 이런 단편적인 정감들을 타고난 감수성으로 엮어낸 것이 비목의 가사이다.

 

 가사를 쓸 무렵, 제일 먼저 머리 속에 스치고 간 영상이 살벌한 전방 그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 하연 산목련이었다. 

 

그래서 그는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의 이름 모를 돌무덤을 포연(砲煙), 초연(硝煙)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묘사하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결 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인 무명용사를 따라 순절한 연인으로 상정하여 아름다운 어휘들을 정리해 냈단다. 

 

한씨의 글에 보면, 비무장지대 인근은 그야말로 날짐승, 길짐승의 낙원으로 한번은 대원들과 함께 순찰 길에서 새끼 염소만한 궁노루 한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날부터 홀로 남은 암놈이 매일 밤 애처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정처럼 맑은 산간계곡에 소복한 누님 같은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궁노루(사향노루)도 울고, 한 소위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이란 가사의 뒤안길에는 이 같은 단장(斷腸)의 비감이 서려 있는 것이다. 

 

비목의 배경은 전쟁의 잔해를 아버지로 하고 북한강 상류 백암산 주변의 남다른 정취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한 세대의 시대적 산물이자 우리네 전쟁사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상징물인 셈이다.

 

 최근 들어 남북 관계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작금의 심상치 않은 북측 기류에 대해 해외 여러 나라들이 우려의 눈길로 바보는 것에 비해 오히려 한국 국민들은  설마 전쟁이야 일어나겠는가.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차분하기만 하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두 세대가 지나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전쟁 경험 세대보다는 전후 세대가 국민의 절대 다수인 지금 우리 국민들은 혹 안보 불감증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유엔군과 한국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왜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이 60세 노구를 이끌고 이역만리 한국땅에서 처절하게 싸워야 했는가. 6월 1일 의병의 날에 이어 6일 현충일, 25일은 한국전쟁기념일 등이 들어 있는 호국의 달 6월의 마지막 날이다. ‘비목’의 가사를 읊조리면서 민족의 아린 기억을 되새기며 분단의 아픔이 치유 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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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9 [19:2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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