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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자유민주 대한민국이 그토록 거북합니까?
친일파 논쟁과 역사 거꾸로 돌리기
 
신성대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0/07/22 [10:26]
▲ 신성대 논설위원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란 제목으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글이 SNS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이런 말을 했을까 싶어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비록 가짜뉴스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이때 맥아더는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고 하지가 미군정 책임자로 한국에 왔다. 이때 일본에 있던 맥아더는 경험자들로부터 한국 통치에 필요한 조언을 듣기 위해 일본 정계의 원로들로 자문위원회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거론되었던 것이 문서로 남아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게 되면 골치가 아프니 친일파들이 집권하도록 해야 미군이 한국인들을 다루기에 용이하다는 내용이었다. 자문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 정계의 원로들은 맥아더에게 이렇게 자문했다.
 
맥아더의 입장에선 당연한 처사겠습니다. 그렇게 사전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바보가 아닌가요? 당시 일본인들이 맥아더에게 그 이야기만 했겠습니까? 온갖 험담에다 수없이 많은 요구까지 자문이란 형식으로 공작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맥아더가 그들이 조언하는 대로 움직였겠습니까?
 
남조선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양성해 놓은 친일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조선 사람들을 다룹니다. 그들이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왜 미국을 위해 충성을 안 하겠습니까? 그들이 있어야 미군이 남한을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친일청산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맥아더가 미국무성에 보고한 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맥아더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친일청산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친일파 청산을 안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은 굳이 일본인들이 조언하지 않았어도 그리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누군가가 친일파 청산해야 한다고 했어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장수는 한 가지 정보만 듣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토사구팽은 치도의 기본입니다. 농사는 사냥개로 짓지 않습니다. 소나 말이 필요하지요. 프랑스처럼 잠깐 동안이었으면 나치 부역자들을 처형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36년이면 감옥에 간 사람 빼고 거의 다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승만을 미국에서 데려오고 하지를 불러 동경에서 세 사람이 두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그 때의 회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승만이 한국으로 돌아와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법을 무려 5번이나 만들지 말라고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가 이 법을 만들어서 실제로 청산에 착수하자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해산시켜 버렸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일본에서 이승만은 맥아더로부터 친일청산을 하지 말도록, 그리고 친일 세력들을 잘 활용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맥아더가 친일파 청산하자고 했어도 못하겠다고 막았겠지요. 그도 그런 고민을 안했을 리 없겠습니다. 다 때려잡아 죽이고 나면 밭은 누가 갑니까? 김구였어도 마찬가지였겠지요. 프랑스도 나치 부역자들 처단하다가 중단하고 말았지요. 김일성도 못했습니다.
 
제주 4.3항쟁의 경우도 빨갱이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당시 미군정에서는 3.1절 기념식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이 194731일에 3.1절 기념식을 하려고 집회 신고를 하자 미군정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해방정국에서 미군이 이를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기념식을 강행했고, 이승만과 미군정은 경찰을 동원해 이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당사자인 경찰이 그 아이를 놔두고 그냥 가버렸다. 이에 흥분한 재주도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러 경찰서로 몰려가자 경찰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자비한 대량 양민 학살로 이어졌다.
 
그 같은 살기등등한 시기에 기념식을 하지 말라고 할 때 안했으면 그런 불행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그런 예민한 시기에는 우연찮은 작은 일탈도 자칫 엄청난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도 그렇게 불행한 사태로 커졌지요.
 
맥아더는 친일파의 은인이자 미국의 애국자였지 우리나라의 은인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은 소련을 막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여기에 남한을 종속시켜 그들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이었고, 이것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전략이었다.
 
맥아더가 친일파의 은인이든 아니든 그건 우리가 단정할 일이 아니지요. 그는 그대로 냉전시대 소련의 진출을 막아 자유와 미국의 국익을 위해 군인답게 최선을 다한 것뿐이지요. 그건 맥아더만의 생각이 아니고 미국의 생각이고 세계 자유진영의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랬다고 해서 그가 남한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에 맞서 남한을 지켜준 것뿐입니다. 당시 소련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북한까지 지켜냈겠지요. 나중에 한국전쟁에서 한반도를 통일시키려 했지만 그때는 중국이 개입하는 바람에 못했지요. 그러니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건 몰염치한 배은망덕이지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떠내려 가버린 내 보따리 내놔라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우리나라가 쿠바와 수교하려는 것을 미국이 반대했다. 미국과 쿠바의 사이가 좋아졌어도 미국은 여전히 우리나라와 쿠바의 수교를 반대하고 있으니 한국이 진정 주권국가인지 묻고 싶다. 과거정부의 관계자들은 그 이유가 우방인 미국의 의사를 존중해서라고 하였다. 우방은 친구 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영국과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친한 우방일까. 당연히 영국이다. 그런데 영국은 쿠바와 수교를 했다. 캐나다와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더 가까운 우방일까. 당연히 캐나다다. 그런데 캐나다도 쿠바와 수교를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가까운 우방일까. 당연히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도 쿠바와 수교를 했다.
 
외교란 국익에 따라 그때그때 밀고 당기는 것이지요. 당연히 북한과 대립 중인 남한이 북한 편인 쿠바와 수교한 다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을 겁니다. 남한이 쿠바와 굳이 수교를 해야 할 이유보다 수교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남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쿠바와의 수교를 미국이 말렸을 수도 있지만 북한의 방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크지요. 한쪽 얘기만 듣고 제 짐작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부지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자기들의 우방이라면서 왜 우리와 쿠바의 수교를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친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졸개로 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쿠바와 수교를 안 하고 있는 나라는 단 2개국인데, 그것은 한국과 이스라엘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쿠바와 수교를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외교의 현실이고 민낯이다.(이는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드는 인간들에게 물어 보아야 할 문제다. 자주 독립 대한민국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렇게 배배꼬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끝이 없습니다. 그런 논리면 쿠바와 수교를 안 한 이스라엘도 미국의 졸개라는 말인데 그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해보십시오. 마찬가지로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들도 다 미국의 졸개들인가요? 대만과 수교를 끊은 나라들은 다 중국의 졸개가 아닌가요?
 
전 세계 150곳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와 미국은 행정협정을 맺고 있다. 그것을 소파(SOFA)라고 한다. 한미소파, 미일소파, 미독소파 등등이 있다. 그런데 이 소파가 나라마다 내용이 다르다. 미국과 독일 간의 소파에는 미군기지내 환경오염의 원상복구 책임은 미군이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소파에는 미군기지내의 환경오염은 미군이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미소파를 맺을 당시 우리는 환경오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잉여물 하나라고 차지해서 먹고살려고 정신이 없었을 때입니다. 독일처럼 일찍이 환경오염에 대한 자각이 있었더라면 당연히 그런 조항을 우리도 넣었겠지요. 미국이 왜 그런 걸 미리 챙겨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었음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게 조상 탓하는 거지요. 앞으로 고쳐나갈 일이지요.
 
또한 독일 여성과 미군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양책임은 미군이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 소파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러니까 미군이 한국에서 애를 낳아 놓고 도망가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걸 독일식으로 바꾸자고 했더니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성토했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의사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는 눈물겨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겪고 있을 힘들고 어려운 외교 전쟁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런 문제의 책임을 미국에만 전가하는 것도 협량한 주장입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월남, 필리핀, 동남아에 가서 애를 낳고 도망간 한국인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외교무대에서 한국이 힘을 못 쓰는 건 국력이 미약해서이기도 하지만 동맹인 미국과 국익이 서로 상치되는 점에서 외교가 우리 멋대로만 되지 않을 수 있지요. 그래서 힘이 받쳐주어야 하고 뱀같이 지혜로와야 하는 게 외교가 아닌가요? 잘 찾아보시고 공부해보시면 미국 덕분에 외교적으로 도움 받은 일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무작정 편들기 전에 그가 제대로 인재를 발탁하고 외교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도 같이 해봐야 할 것입니다.
 
1965년에 박정희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조약을 보면 어느 한 군데도 일본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구절이 없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받은 3억불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이었다. 그것이 일본 의회의 속기록에 기재되어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다. 그러므로 일본은 사과할 의무가 있지 축하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일본으로부터 3억불을 받음으로써 일제 36년간의 식민 지배가 합법적인 지배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될 여지가 생겨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것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에 대한 축하금이었으니까.
 
일본의회 속기록만을 가지고 배상금의 의미와 목적을 호도하는 건가요? 역사학자도 아닌 정치인이었던 분이 이제 와서 식민지배 당한 것을 두고 합법적이었냐 불법적이었냐 따지는 것도 참 구차스럽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이씨 성을 가진 조선 왕이 자신과 일족들의 안녕과 부귀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나라를 일본에 헌납한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민주의 나라가 아닌 왕의 나라였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아직 미개한 상태였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그들의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고 그에 순종하였을 뿐입니다.
 
국제법에 의하면 유네스코 문화재 협약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모든 문화재는 원소유국가에 되돌려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한일조약 가운데 문화재 협약 부분에 의하면 일제가 약탈해간 수십만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해 일본의 소유를 인정해 버렸다. 이것은 아주 굴욕적인 조약인 것이다.
 
당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문화재 환수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습니다. 그런 걸 다 돌려달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기실 그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조약도 체결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했었지요. 만약 우리가 직접 싸워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더라면 그보다 훨씬 더한 조건까지 보태서 더 많은 배상금을 받아냈겠지요.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도 전후에 일본과 협약을 맺었다. 필리핀의 경우 일본이 3년간 지배했는데, 협약의 제목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제목이 한일조약인데 일본과 필리핀사이에는 배상조약이라고 명기되었다. 그리고 배상금도 54천만불이나 받았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를 받고도 고작 3억불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돈을 1965년에 받았는데, 필리핀은 1956년에 받았다. 우리보다 9년이나 앞서 받았으니 인플레를 생각하면 그 액수는 우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 하필 필리핀과 비교합니까? 대만, 중국, 다른 동남아 여러 국가들은? 나라마다 입장이 다르고 그때그때 처한 역학적 상호관계가 다른 걸 단순비교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우매한 짓입니다. 아무렴 더 받아냈으면 좋았겠지만 협상이란 그렇게 제 욕심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기한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미국 CIA 자료에 의하면,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뒷돈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지도자들 중 뒷돈을 받은 사람은 박정희 밖에 없다. 뒷돈을 받았으니까 배상금을 적당히 깎아 준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전시의 여성인권 해결에 대한 규범이 있는데, 박근혜가 2015년에 일본과 체결했던 한일위안부 합의는 그 규범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에서 이것이 잘못되었으므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미국 CIA문서라고 하면 깜박 죽고 들어갑니다. 아무려나 다 신뢰할 수도 없겠지만 그마저도 제 눈에 띄는 부분만 발췌해서 모든 사건이나 관계의 전부인양 떠벌이는 건 무지하거나 삿된 의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개국이든 선진국이든 정치하는 데에는 엄청 돈이 들어갑니다. CIA문서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게서 뒷돈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돈 박정희 혼자 밥사먹고 술사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뒷돈이라도 많이 뜯어냈으면 그나마 다행인 거지요. 그리고 다른 아시아 지도자들은 일본의 뒷돈을 받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그런 것도 CIA문서에서 확인했습니까? 앞으로 공개될 문서에는 무슨 얘기가 담겨있을까요?
 
우리나라가 그 동안 친일반민족 세력들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이렇듯 불평등 조약들을 맺어 온 것이 일본에게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베와 일본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 보복을 하게 되면 민심이 이반되어 일본이 원하는 친일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래서 나라를 망치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서 나라를 부흥시키고 있는 중인가요? 국제법 무시하고 무조건 일본을 압박한다고 세계가 동조할까요? 감정적으로 외교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요? 역사 바로 세우기? 친일파 척결? 일본 길들이기? 아무렴 조상들이 못하거나 안한 일을 자기가 해내겠다고요? 그런 일이 훌륭한 일인가요? 그런다고 지배당했던 치욕의 역사가 떳떳해집니까? 외교가 알량한 자존심 싸움입니까? 그런 배짱이 왜 젖비린내 나는 북한 김정은 앞에서는 안 나온답니까?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어 국군통수권자가 되자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다. 1대부터 21대까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들은 모두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이었다. 그 중에서 살아 있는 유일한 자가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백선엽이다. 어떤 사람이 백선엽을 방문해 당신은 훌륭하다. 당신은 국군의 아버지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자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앞잡인데 그런 인간에게 그렇게 말하면 국민들이 얼마나 절망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말을 야당과 재향군인회에서 알고 우리 국군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비난했다면서 나를 빨갱이라고 성토하며 내 사무실 앞에서 데모와 시위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가 있었다. 대장은 일본사람이고, 그 밑에는 다 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들의 만행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부를 벗기는가 하면 여자들은 강간을 했다. 독립군들에게 식량을 대준 마을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백선엽이 우리 국군의 영웅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죽은 이름없는 우리 독립군들은 무엇이 되겠는가.
 
백선엽 장군이 청년 시절 일본군이었던 것을 아니라고 속인 적은 없습니다. 그가 뒤늦은 시기에 간도특설대에 들어갔지만 조선인들을 직접 토벌한 적도 없고,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가 들어가기 훨씬 전에 다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백선엽 소위가 다 한 것처럼 오도한 겁니다. 그런 논리라면 일제 때 총독부나 경시청 등 관공서에 근무했던 조선인들 다 찾아서 친일파 낙인찍어야지요. 나라가 망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그렇게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친일보다 더 비겁하고 야비한 짓입니다.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있는데,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천진군)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대장을 죽였다. 그런데 백선엽은 평소 이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까지 했다. 이런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가.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이 대한민국이 왜구의 재산인가.
 
안중근이나 윤봉길 등 독립운동한 분들은 그들대로의 삶을 택한 것이고, 반도에 남은 조선인들은 그들대로 삶을 살기 위해 군인도 되고 경찰도 되고 교사도 되고, 일본 유학을 다녀와 학자도 되고 시인도 되고 소설가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 나라에서 각자 자기 길을 간 것뿐입니다. 해서 독립군들도 반도에 남아있는 그런 사람들을 모조리 원수라고 쏘아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너도 독립운동 안하냐고 나무랄 순 없는 노릇이지요. 항일운동을 한 유공자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사돈에 팔촌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독립운동했습니까?
 
이승만 치하때 8.15가 되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친구들에게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단하에서 박수치고 있는 사람들은 광복군이고, 단상에서 박수 받고 있는 자들은 다 친일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이승만이 국민에게 단결하라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친일파를 상전으로 모시고 단결하라는 의미였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일제 때의 내선일치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살아있는 독립군들의 증언이다.
 
부친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방 되자마자 이북은 소련을 등에 업고 나타난 김일성이란 듣보잡놈이 선점해 버렸고, 남한은 미군을 등에 업은 이승만에게 뺏겨서 설자리가 없어진 원통함이 한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원칙대로 이상적으로만 흐르던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똑같이 따지자고 들면 그렇게 못 마땅했으면 왜 진즉에 북으로 넘어가지 않았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하면서 국제회의 등에서 일본인들을 만나면 독일처럼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나무랬다. 그리고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너희들의 국립묘지에 갔더니 거기엔 야스쿠니 신사의 졸개들이 잔뜩 묻혀있더라. 그곳에는 왜 참배를 하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제일 애독하는 신문이라던데, 과거청산을 하려면 늬들이나 똑바로 해!”라고 말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그런 고민도 하면서 현 시국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한의 보따리를 풀어 젖히고 시비조로 덤비니 아무리 미안한 감정을 가진 일본인이라도 고운 말을 해줄 리가 없겠지요. 그렇게 나라 망신시켜놓고 애국 열사인양 자랑하는 꼴을 보았다면 윤봉길 인중근 의사도 어이없어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분들이 설마 당신들같이 속 좁은 생각과 오기로 독립투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1945815일 이후 대한민국에는 친일파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든 과거를 덮고 조국 건설에 목숨 바치고 헌신해왔습니다. 모두가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 아무려나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백선엽도 영웅이 되지 못했겠지요. 그게 그렇게 배 아파할 일입니까?
 
김원웅 광복회 회장: 1944년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815일 광복 후 대전에서 정착하며 살았다. 대전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6.3항쟁에 참여 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비록 대한민국이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 했던 분들을 박대하거나 그들의 공적을 폄훼한 적은 없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형편 되는대로 그들과 그 후손들에게 보답해왔습니다. 따지고 들자면 그들이라고 실수와 허물이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런 건 다 묻어두고 공적만을 빛나게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해방된 나라의 권력을 차지해서 직접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었겠지만 냉전의 경계선에 처한 국운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으니 어쩌겠습니까? 어쨌든 그분들이 원했던 건 해방된 나라, 그리고 잘 사는 나라, 자유로운 나라였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은 지금 사람들처럼 과거사를 가지고 티걱태걱하며 삿대질 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를 탓한 적도 없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이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쟁했습니다.
 

평양 시가지 진입 앞두고 - 1950년 10월 평양 남쪽 선교리에서 시가지 진입을 앞두고 미 공지(空地) 연락 장교와 작전을 숙의 중인 백선엽 장군. /백선엽 장군 제공 

 상처 없는 역사는 없다!

 
위 광복회장의 글을 감정 빼고 읽어보면 이승만, 맥아더, 박정희, 백선엽 같은 분들이 그 혼돈의 상황에서 최선의 판단을 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청산했더라면 나라는 곧 다시 망했을 겁니다. 그리고 곧 공산화 되었겠지요. 한국전쟁에서 일본군 출신이 남쪽에 없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켜냈겠습니까? 백선엽을 친일파로 몰아부치는 건 역사와 현재를 뒤집겠다는 역모에 다름 아니지요. 그게 아니라면 그분들의 아버지나 형제가 인민군 빨치산이었는지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국가가 된 것을 한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오려붙이고 짜깁기 한 억지 논리이지만, 기실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광복군과 독립군들은 민주주의가 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모두가 오직 공산사회주의’ ‘레닌주의밖에 몰랐습니다. 미국이나 미국에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말도 안통하고 사상도 다른 그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었던 게 당연지요. 만약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안창호나 이승만처럼 미국에서 활동했거나 한번이라도 미국에 건너가 민주주의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더라면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겠지요.
 
일본의 항복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광복군 입장에서 건국의 주체가 되지 못한 건 섭섭하고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무정함일 뿐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키기 전에 왜 광복군이 일본과 싸워 해방시키지 못했냐고 원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만약 그때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소련, 혹은 광복군의 주도하에 일본을 항복시키고 해방이 되었더라면 당연히 건국의 주체가 바뀌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공산사회 한민족 주체국가가 되었겠지요.
 
전후 맥락과 당대의 사정을 대승적으로 헤아리지 않고 일부 개인적이고 지엽적인 트집꺼리들만 모아서 진영 논리로 재편집해서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제집 족보로 여기는 졸렬한 사고입니다. 그런 자료들로 이제와서 친일청산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때 숨겨지거나 몰랐던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걸로 역사학자들이 다시 역사를 기록하겠지요. 그렇게 바로 잡으면 그만입니다.
 
아무려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소리소문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어찌 독립군이나 6.25동란의 희생자들뿐이겠습니까? 역사란 그런 무정함까지 있는 그대로입니다. 역사와 법은 그래서 다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무슨 규칙대로 움직이고 법대로 심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스포츠에선 오심조차도 인정하고 넘어갑니다. 한국인들을 그것조차 우기고 앙심을 품지만요. 역사엔 누가 옳고 그르고가 없습니다. 지난 역사에 거품을 무는 인간은 돈키호테이거나 역모를 꿈꾸는 빨갱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런 논리로 투쟁하자면 그 반대쪽에서 지난 날 김구 등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공산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사람들이었다는 덮어둔 사실들을 이제 와서 들추어내어 그들을 빨갱이로 몰아 그들의 묘와 동상을 파내고 부수자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경의 사도 바울이 사울로 불리었을 적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의 처형에 적극적이었다고 기독교 역사에서 그를 파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몽매한 짓이지요. 그렇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허구한 날 편 갈라 싸움질하자는 게 촛불혁명입니까?
 
말로만 국민대통합!’
 
역사의 큰 수레바퀴가 빠르게 굴러갈 때에는 한없이 거칠고 파괴적입니다. 인정사정 다 봐주면서 구르고 멈추지 않습니다. 그걸 당대도 아닌 후대의 사람들까지 나서서 억울하다면서 바퀴를 되돌리겠다고 수레앞에 막아서고 있습니다. 그 용기를 가상히 여겨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 하지만 실은 돈키호테적 어리석음입니다. 건국과 구국의 영웅들을 친일파라고 몰아세우면서 왜 북한 김정은에게는 독재자라고 말을 못한답니까? 독립군의 후손이라 해서 친일한 부역자를 단죄할 권한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런 권한 없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억울한 과거사를 가지고 정의와 정정을 부르짖는다면 역사를 다시 수백 년 동안 뒤집고 뒤집어도 끝이 안 납니다. 그런 걸 두고 역사를 소화하지 못했다고 하는 거겠지요. 몇 백 년 전 너희 조상 누구가 우리 조상 누구를 모함해서 패가망신 시켰으니 너희 문중 후손들이 사과하고 손해를 배상하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자명예훼손죄로 조상의 억울함을 고소할까요? 만약 김구가 건국대통령이 되었으면 나라를 정말 잘 이끌었을까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통일을 이루었을까요? 번영을 기틀을 다졌을까요?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그걸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오랜 식민 지배를 당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한결같이,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스런 저개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성찰해 본 적이 없는, 책임감 결여된, 어찌보면 순진무구한, 세계관이 열리지 못한 우물안 철부지의 팔자 좋은 넋두리로 철없는 젊은이들을 현혹하는 건 사악한 행위입니다. 역사는 원래 자랑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역사엔 인정도 사정도 없습니다. 윤리도덕적 잣대로 역사를 평가하는 건 바른 역사의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순결한 나라 없습니다. 이제 와서 친일파 낙인찍고 토착빨갱이 청산한다고 역사가 순결해지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서 어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됨됨이와 행적을 오늘의 잣대로 평가하고 비판하여 투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건 매우 못된 짓입니다. 대한민국, 그렇게 만만한 나라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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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22 [10:2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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