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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문화칼럼] '국립 아리랑 박물관' 건립해야
아리랑은 국민대통합의 구심점
 
김승국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08/25 [19:16]
▲ 김승국, 노원문화재단이사장     

 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라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민족과 함께 한 시간은 멀고 먼 옛날부터였겠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로 본격적으로 회자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후이다.

 

왜냐하면, 1926년 10월 춘사 나운규는 자신이 제작한 무성영화‘아리랑’을 단성사 극장에서 상영하였으며, 주제곡‘아리랑’이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우리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영화‘아리랑’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오기호를 죽인 영진이가 수갑을 차고 일본 순사에 끌려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구성진 변사의 설명 뒤로 절절히 흐르던 주제곡 아리랑은 우리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며 마음속 깊이 아리랑을 새겨 놓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가 만들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함경도 회령 출신의 나운규가 어린 학생 시절 회령·청진 간 철도를 놓았던 노동자들이 부르던 '아리랑‘ 선율을 떠올려 나운규가 직접 가사를 짓고 곡보(曲譜)는 단성사 음악부에서 활동하였던 서정(曙汀) 김영환(金永煥;1898-1936)에게 부탁하여 주제가 '아리랑'을 만들었다. 

 

'아리랑'의 작곡자 김영환은 휘문학교를 나와 신생 매체인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계에 뛰어들어 38세 나이에 작고 하기까지 작곡가, 바이올린 연주자, 장화홍련전의 감독이자 작가, 변사 등 종횡무진 활동하면서 업적을 남겼다.

 

김영환의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1927년 박승필이 만든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로 작곡된 가요 '강남 달' 노래로 알 수 있다. 가요 ’강남 달’은 '강남 달이 밝아서 님의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하는 인기 가요로 지금까지 불린다. 

 

나운규는 아련하면서도 정서가 있고 흥겨운 감정도 안겨들면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통속적인 아리랑을 만들어줄 것을 김영환에게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새롭게 편작된 노래가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인 ‘아리랑’인 것이다. 주제가 ‘아리랑’은 기존의 아리랑과는 다른 새로운 아리랑이란 의미로 ‘신(新) 아리랑'으로 불리다가 모든 아리랑의 중심 또는 기본이라는 의미로 ‘본조아리랑'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 큰 사진과 초록색 포스터는 영화 아리랑 포스터, 오른쪽 위 인물사진은 나운규 감독, 원형 안은 아리랑 작곡가 김영환(예명 김서정) 모습      © 경기데일리

 

'김영환은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그와 음악부원들이 무성영화를 뒷받침하는 음악 반주를 하였다. 1926년 만들어진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은 전통적인 9/8박자나 12/8박자 대신 3/4박자, 7음계의 서양화된 작곡으로,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같은 전통의 5음계 아리랑과는 다른 리듬이다.  

 

1926년 이후 전국에 산재한 민요 아리랑은 통한(痛恨)의 노래이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기쁨의 노래이기도 했다. 또한, 아리랑은 저항의 노래였고, 고달픈 삶을 달래주던 노래였고, 망향의 노래였고, 기다림의 노래였다.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에 다양한 가사와 선율로 존재하고 남북한은 물론이고 한국인이 사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아리랑이 있다. 아리랑은 남북을 통틀어 약 60여 종 3천6백여 수라고 하나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아리랑은 분단 조국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공통 언어이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재외 교포들과 조국 대한민국을 이어주는 공통 언어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리랑을 국민통합의 구심점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적절하다. 그러한 총론은 있는데, 어떻게 아리랑을 국민통합의 구심점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각론이 빈약하다. 

 

 아리랑을 국민통합의 구심점으로 하는 일에 있어서 국가가 나서서 정책을 수립하고 직접 시행하기보다는,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아리랑 콘텐츠 사업을 적극적으로 돕고 지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민간 차원에서 아리랑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의 생성과 소멸에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일지도 모른다. 아리랑과 관련된 우수한 콘텐츠의 생성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민간 차원의 도전 정신이 우수한 아리랑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할 사업 중에서 민간 차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아리랑 박물관의 건립’이다. 아리랑 박물관은 아리랑을 통한 국민 대통합을 구현하기 위한 컨트롤 센터의 기능과 전국 각지와 각 기관에 산재해 있는 아리랑 관련 자료를 통합하여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관련 자료를 연구·발굴·보관·전시·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 

 

위의 기능 이외에도 아리랑 박물관은 아리랑 생활음악화와 창작 활성화의 산실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리랑 관련 음반 제작과 연구 책자 발간, 관련 기념품 개발을 주도하도록 하고, 아리랑을 통한 남북 문화 및 학술교류, 그리고 아리랑 세계화의 주관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아리랑 박물관 내에는 공연장과 영화관, 그리고 전시실을 두어 아리랑 관련 융복합 공연물 및 영화 그리고 전시물의 산실로서의 기능과 언제라도 박물관에 가면 아리랑과 관련된 공연과 영화, 그리고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올해로서 해방 76년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디에 있던 모두가 아리랑이라는 유전자가 몸속에 흐르고 있다. 아리랑을 국민대통합의 구심점으로 하여야 한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과 체계적 연구 및 활용 공간은 민간 차원에서는 안정적 운영 기반을 갖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러한 종합 기능을 갖는 ‘국립 아리랑 박물관’의 건립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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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5 [19:16]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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