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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재 칼럼]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이름과 대의를 헛되이 부르는 자여!
그대들이 안중근의사를 아십니까?
 
데스크 기사입력  2020/09/20 [15:02]
▲ '소년영웅'을 발간하는 박창재 대표   

지난 16일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을 반박해 온 민주당이 오늘은 안중근 의사를 소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추 장관의 아들이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의 아들이 무릎 수술을 받은 것은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었고, 이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 (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이라고 했던 안 의사의 유훈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이에 분개한 전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 박창재(월간 영웅 발행인)이 경기데일리에 보내온 글이다'[편집자 주]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이름과 대의를 헛되이 부르는 자여, 그대들이 안중근의사를 아십니까?

 

곧 10월 26일이면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11주년이 됩니다. 조선을 침략한 일제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 죄를 벌하고, 동양의 평화를 염원하며 만 31세의 청년 안중근은 다음해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 형장에서 순국하셨다.

 

황해도 해주의 명망높은 대갓집의 장손으로 태어나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던 안중근의사는,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자신의 전 재산, 사랑스런 가족, 일상의 행복을 모두 포기한 채 구국의 험난한 길로 뛰어들었다.

 

▲  스스로 단지를 한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글  '위국헌신군인본분, 爲國獻身軍人本分   ©

 

누구의 권유도, 누구의 압력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 일제에 짓밟히고 있다는 처절한 현실에서 자신이 해야할 강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었을 뿐입니다.

 

상해로 건너가 구국의 길을 모색했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구국의 영재를 양성하였다.

 

그러나 백척간두에 놓여 멸망해가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의사는 직접적인 구국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북간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등 항일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끝모를 구국운동을 계속하였다.

 

1908년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 두만강을 건너 국내진공작전을 펼쳤고, 일본군에 패하여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며 12일간이나 산속을 헤매었을 때, 생사의 기로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니, 피골이 상접한 그를 동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은 검게 변하고 뼈만 남아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으며, 옷은 썩어 헤어져 몸을 가릴 수 조차 없을 정도이었고 이가 득실거렸다.

 

▲ 한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모습     © 경기데일리

 

이때의 상황을 의사는 그의 자서전 『안응칠역사』에서 ‘출전한 뒤로 전후 날짜를 헤아려보니 무릇 한 달 반인데, 집안에서 자본 일이 없어 언제나 노숙으로 밤을 지샜고, 장맛비가 그칠 사이 없이 내려 그 동안의 고초는 붓으로 다 적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한 고초를 겪고 난 후에도 의사는 다시 동지 11명과 같이 넷째 손가락을 단지하여 그 피로 태극기에 ‘大韓獨立’이란 혈서를 쓰고, “3년안에 뜻을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항일투쟁의 결의를 다졌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10시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의사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단죄하였다. 그리고는 러시아말로 당당히 외쳤습니다.(당시 하얼빈은 러시아의 조차지 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꼬레아우라(대한 만세)!

꼬레아우라(대한 만세)!

꼬레아우라(대한 만세)!

 

여순 일제 재판정에서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을 당당히 지적하며 일제의 온갖 감언과 회유를 거절한 안중근의사는 판사가 사형을 언도하자,  “일본에는 사형보다 더 큰 판결은 없느냐?”며 일제의 불법 부당한 판결을 비웃었다. 

 

보슬비가 조용히 내리는 1910년 3월 26일 아침 안중근의사는 어머님이 손수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여순 감옥 형장에서 순국하셨다.

 

나라가 잘못하여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안중근의사는 단 한번도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라로부터 티끌만큼의 보살핌도, 혜택도 받지 못했지만, 단지 자기가 태어난 조국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안중근의사는 사랑스런 아내, 자녀, 부모형제, 그리고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까지 나라를 위해 바친 것이다.

 

누가 이러한 거룩하고 의로운 정신과 실천을 누구에 비유해 그 숭고한 이름을 입에 올린단 말입니까?

 

부끄러워 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영령 앞에 사죄하십시오!

지금 당신들이 누구의 희생으로 그 자리에 있는지 숙고해 보십시오.

 

아들의 사형을 목전에 둔 안중근의사의 어머님 조 마리아 여사는 옥중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 경기데일리

 

***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기고 / 전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 박창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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