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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만족할 줄 알며 살자
양심도 속이고 중상모략도 서슴없이 하는 위정자의 끝은?
 
김성윤 주필 기사입력  2020/10/07 [23:11]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말이 있다이 말은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며 살다보면 몸도 마음도 평화롭다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산다. 하지만 제 분수를 알고 살아야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는 인간의 소유에 대한 관념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즉 제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평범한 농부인 바흠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기 땅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왜냐하면 열심히 농사를 지어봤자 지주에게 빌린 땅의 임대료를 주고 나면 남는 것은 가난의 굴레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텅 빈 주머니는 다른 세상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 농부들이 땅만 넉넉히 가질 수 있다면 악마나 다른 누구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자기 땅을 조금 가질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자기 땅을 가지게 되자, 그는 좀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때 볼가강 너머에서 왔다고 하는 한 나그네로부터, 자기네들이 사는 고장에서는 기름진 땅이 무한정 있는데, 요즈음 들어 그곳에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이주해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바흠은 열심히 일해서 모았던 집과 가재도구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땅을 팔고 가족과 함께 그곳으로 가려고 길을 떠난다.
 
그는 그곳에 가서 드디어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농사일도 열심히 하여 그가 가진 땅은 이전에 비하여 세배나 되었고 생활은 열배나 나아져서 드디어 부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땅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때 농민들이 더욱 살기 좋은 새로운 고장으로 이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다시 기분이 들뜬다.
 
그리고 또 떠난다. 드디어 끝없이 펼쳐진 바스키르의 초지를 보자 너무도 기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촌장이 바흠에게 제안하기를 1천 루블만 내고 그가 온종일 걸어갔다가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 땅을 차지해도 된다고 했다. , 조건이 하나 붙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리하지 못한다면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고 하였다.
바흠은 이 계약을 승낙하였다.
 

▲ 저자: 김성윤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신국판 365페이지, 출판 통일신문, 정가: 1만8000원     © 경기데일리

그는 너무 설레는 나머지 뜬눈으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지평선 위에 태양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그는 촌장의 전송을 받으면서 기름진 초원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원래 바흠이 계획했던 만큼의 충분한 넓이의 땅에 도달해서 돌아가려고 생각해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욕심으로 더 멀리까지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해가 석양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먼 거리를 온 바흠은 제시간에 돌아가기 위해 출발지점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발지에 다다르자 ", 대단하군!" 촌장이 소리쳤다.
"좋은 땅을 얻었소!" 하지만 바흠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바홈의 하인이 급히 달려와 그를 안아 일으키자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 들고 바흠의 머리에서 발치까지의 길이만큼 땅을 팠다. 그 구덩이는 그의 묘를 만들기 위한 땅으로 그 땅은 단 "6피트의 땅" 이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욕심이 얼마나 끝이 없는가?
그리고 그 욕심이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평범한 교훈을 이 단편소설은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문구인 6피트의 땅... 우리는 아무리 우리가 욕심을 부려도 결국 너나없이 6피트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죽고 나면 화장을 하여 한 줌 재가 된다. 그 재(골분)는 골분자기에 담겨 가로세로 각각 27cm 공간의 납골당에 안치되기 때문이다.
 
우리 주면에는 '바흠'같은 종류의 사람이 많이 있다. 성공을 위하여 물불을 안 가리는가 하면, 명예를 위해 거침없이 거짓말도 한다. 양심도 속이고 중상모략도 서슴없이 한다.
 
그렇게 하여서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말로는 어떠했는가? 친구와 이웃의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우리는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에도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그것이 자라 장성하면 죽음에 이르니라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유교경(遺敎經)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난하다. 반면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것 같지만 부유하다. 따라서 소욕지족 소병소뇌(少慾知足 少病少惱) 적은 것으로써 넉넉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라는 뜻을 새기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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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07 [23:11]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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