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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논객에게 길을 묻다
전략(7)
 
정재학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0/10/30 [20:31]
▲   정재학 칼럼니스트

보수는 문재인 정권이 잘한 점은 반드시 학습해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전략의 출발점이다. 코로나 시기에 방역물품을 6.25 참전국들에게 보내어 외교의 지평을 새롭게 연 점, 그리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우대 정책, 공익직불제를 실현하여 농민의 어려움을 보완한 점 등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 나라 구석구석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찾아보라.

 

그동안 보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어만 댔지 한 게 뭐가 있는가.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할 일을 찾아라. 자유로운 기업 경영과 노동자, 국가의 3위일체(三位一體)를 시도하는 정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반미(反美)의 정점(頂點)에 미군철수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좌파 문재인 정권이 어떻게 미군철수를 유도하느냐는 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답은 하나였다. 그건 미군주둔비에 대해 시비를 걸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주둔비 인상에 대한 반대 여론도 시비의 요건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둔비를 이용해서 미국을 질리게 만들고, 반미(反美) 여론을 형성하여 미군을 철수시키는 일이었다. 한미군사연합훈련조차 하지 않는 지금이다. 따라서 한미동맹마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는 이때 주사파와 자생간첩, 남파간첩들을 비롯한 친중세력들은 민주당을 동원하여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주둔비 협상은 미국이 질릴 때까지 시간을 끌게 될 것이고, 한미군사훈련은 문재인 정권이 존재하는 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군철수에 대한 가장 큰 열망을 보인 나라가 북한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 역시 반미(反美)로 70년을 정권 보호에 이용하였지만. 지금 미중(美中) 패권전쟁 기간 동안 미군철수를 북한보다 강력하게 부추기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지금 사이버상에서 미군철수와 반미(反美)를 주제로 떠들고 있는 자들은 중국이 부리고 있는 유학생 혹은 친중(親中)간첩들이다. 나라가 중국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는 이런 과정을 지켜만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군철수는 중국의 침략과 북한의 적화 야욕(野慾)을 부추기는 망국(亡國)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보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무장(武裝)하여 주사파와의 전쟁을 위해 육체와 영혼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수는 원자력을 지켜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 원자력을 없애려는 이유가 북한 핵무장의 효과를 높여주기 위해 우리 원자력을 가로막고 있는 줄로 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핑계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핵이 없고,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다는 차이는 핵 폐기를 바라는 미국과의 협상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만약 우리도 핵을 가진다면, 북한핵은 그 가치가 절감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의 핵 개발 지원과 세계를 돌아다니며 북한핵을 옹호했다고 자랑하던 노무현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은 그 김대중과 노무현의 뒤를 이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탈(脫)원전정책을 펴고 있는 그 배후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제1의 원자력기술을 보유한 나라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술로 원자력의 단점을 얼마든지 보강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만 있다면 방대한 양의 방사능폐기물도 우리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세계 각지에 있는 수명을 다한 원자력발전소 해쳬도 우리가 담당할 수 있다.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수는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의 음모를 밝히고, 원자력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라. 세계 제1의 원자력 기술로 핵융합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라.

 

문재인이 고개를 흔들 만큼 괴롭게 하는 것이 바로 가짜뉴스다. 문재인과 정권에 관한 그것이 가짜인지 진실인지는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문제는, 문재인이 바로 이 가짜뉴스로 정권을 찬탈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관련 가짜뉴스가 약 20여 가지에 이른다. 실컷 퍼뜨리고 조롱하며 정권을 찬탈하던 문재인이었지만, 가짜로 밝혀진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문재인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보수는 가짜뉴스는 부정할지라도, 문재인 정권의 과거 행적만큼은 조롱할 줄 알아야 한다. 왜 움추려 들려고만 하는가.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따지고 물어뜯을 것은 반드시 물어뜯어라. 그것이 정치다.

민주당 이해찬이 무려 20년 집권을 말한 바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리라고 믿는가.  더불어민주당이 왜 박근혜를 4년째 잡아가두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박근혜 석방이 곧 보수의 부활임을, 바로 그것을  두려워 하고 있음이 아닌가.

 

보수는 잊었는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좌파단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범민련을 필두로, 미전향장기수들이 고문 대접을 받으며 나타나고, 전국교원노조(전교조)를 비롯한 전국농민회(전농), 여성동맹, 민노총노동조합, 언론인노동조합 등 모두 등장하였음을 상기해 보라. 이해찬이 자신 없는 말을 했다고 보는가.

 

이들 단체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남로당 역사를 뒤져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해방 후 남로당의 지휘 아래 발생했던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가 김대중 정권 하에서 모조리 등장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해찬의 자신감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려 50년을 잠복해 있던 남로당이 김대중을 만나 모조리 부활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筆者)는 아직 6.25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주 4.3과 여순반란사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여 대한민국 역사를 조롱하고 있는 현실 역시 새로운 비극의 출발일 것이다.

 

보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보수를 부르는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그것도 어린아이 포함 123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이 불갑산 용추사 빨치산 서남부 사람들에게 학살을 당한 마을에서 태어난 전라도 사람이다.

 

그러나 불행한 전라도 사람이다. 70년 전 전라도를 휩쓸던 붉은 광풍이 지나간 곳에 아직도 인민공화국 남로당 출신들이 살아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떼문이다. 90세에 이르는 과거 남로당을 따르던 그들을 볼 때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 집안 온 가족을 죽이며 종자 하나 남긴다며 남겨둔 이들 하나가 자라서, 이제 70 나이에 이른 동네 형님분도 계신다. 군산으로 가는 도망갈에 시간이 없어서 생매장을 하고 죽창을 찌른 그들은 국군의 토벌 속에서 무사하였고, 처벌되지 않았다.

 

자유당 편이 되어서 정치세력들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돈과 사람을 동원하여 선거를 도운 그들은 살아남아, 후일(後日) 국군 양민 학살을 떠들었고, 그들의 학살은 무시되었다. 학살 위령비에 빨치산 노릇을 하던 이가 명단에 있음을 보고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국군학살위령비만 있는 이 나라 현실이다. 왜 전남만 무려 10만에 이르는 빨치산 학살을 해원(解冤)하는 양민들의 위령비는 없을까. 그러나 빨치산과 그 후예들은 김대중 정권 하(下)에서 범민련을 중심으로 모조리 부활하였다.

 

나는 20여 년을 논객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전라도에 이런 사람이 있는가”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산다. 그리고 “몸조심 하라”는 말까지 듣는다.

 

심지어 주변 지인(知人)들까지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해가 되면 어쩌누?” 하는 걱정도 들린다. 그러니까, 전교조와 싸우고 좌파와 싸우는 이 모든 것이 가족의 신변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뒤집어 생각해 보면, ‘몸조심 하라’는 말 속엔 필자(筆者)가 싸우는 대상이 얼마나 무섭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표현의 자유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무도한 집단임을,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무리들이 장악한 민주당 세상을 지지하는 지역이 바로 전라도라는 사실에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다고 해서 북한 주도의 통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동안 자유민주의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쉬임없는 협박과 테러, 이런 문제는 수없이 겪은 후(後)다. 고소만 13번, 심지어 조선족을 가장한 남파간첩에게 테러까지 당했던 몸이다. 10년 전 만약 그 고시원방에서 목을 눌리고 죽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지경이었으니, 집안 대소가 애경사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아내만 애경사에 보냈을 뿐. 나는 고소에 대비하고, 붉은 세력들과 싸우느라 무려 20여 년을 사람 노릇을 다하지 못하였다.

 

이후, 오랜 생각 끝에 아내를 제외한 모든 것과 인연을 멀리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들놈은 심하게 다투고 떠나갔다. 제사 때 오는 사촌동생들에게도 오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후 나는 친구들도 떠나보냈고, 가족과도, 친척들과도 가급적 왕래를 끊은 채 살고 있다.

 

언젠가 대한민국이 적화(赤化)되는 날이 오면, 술안주로 먹을 복어가 냉장고에 있었으나 아내가 알고 치워버렸는지 모른다. 또 사다 놓으면 되는 일이기에 아무 말 없이 살고 있다. 독 많은 참복 매운탕 안주를 곁들여 반주 한 잔 하고 잠이 들면, 저 세상이겠지.

 

면암 최익현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흠모하였다. 동학혁명을 일으킨 동학군마저 동학(東學) 비적(匪賊), 즉 ‘동비’라 부르던 분이었다. 그 구태(舊態)스런 시각을 존경한 것은 아니다.

 

면암의 사상은 오직 애국과 효, 동포애를 향한 열정이었다. 순창 전투에서 진압군으로 올라온 자들이 조선동포였기에 무기를 버린 면암. 70고령의 노선비가 보여준 뜨거운 동포애를 나는 흠모하였다.

 

그 순창전투에서 날아온 유탄에 순국(殉國)하신 분이 바로 우리 종증조부님이시다. 면암은 통곡 끝에, 오직 나라 하나만 미치게 사랑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호를 일광(一狂)이라 지어주셨다. 3형제의 막내로 부모님 시묘살이 6년을 수행하던 효자는 그렇게 순국의 언덕에 묻히셨다.

 

여름철이라 유해(遺骸)를 서둘러 땅속에 묻고, 면암은 대마도로 끌려가 곡기(穀氣)를 끊고 왜적을 노려보며 충절의 길을 떠나셨다. 나는 이 의로운 선비의 길을 따라 걷고자 하였다.

 

우리 집안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우의 순국(殉國)을 전해 들은 증조부님은 가솔들을 데리고 순창으로 달려가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 고창으로 모셔왔다.

 

의병장의 후손, 의병의 집안이 무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핍박 속에서 도망쳐 나온 증조부님은 무려 18년을 떠돌아 다니셔야 했다. 온갖 간난(艱難)과 신고(辛苦)스러운 삶을 마치고, 세월이 지나가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굴레를 벗고 나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형님댁은 후손이 끊겼고, 아우 일광 할아버지댁은 어린 자식 둘만 남기고 조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양자를 붙이고 이어서 형님댁을 보존하고, 조카가 남긴 손주 둘을 돌보면서, 증조부님은 흩어진 핏줄들을 모으고 산소를 돌보며 집안을 안돈(安頓)시키셨다. 외로운 선비의 집안, 명필로 이름 높았던 증조부님이 남기신, 고인돌로 유명한 상금산소 바위에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오늘 우리 후손들의 눈시울을 젖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증조부 3형제 집안과 그 윗대 집안 합쳐 17명의 남자들이 번성하여 이제 제각각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집안 형님의 눈물을 보았다. 똑똑하고 잘난 형님이기에 집안의 기대를 받던 형님이셨다. 그런 형님이 부산 해양대학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곧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연좌제에 걸린 것이다.

 

형님의 외가가 바로 6.25 때 지리산 남부군을 이끌던 이현상의 집안이었다. 그런 이현상을 외가로 둔 형님은 연좌제의 한을 가슴에 못처럼 박고 사셨다. 비록 전두환 시대에 연좌제가 폐지되어 공무원이 되셨으나, 한(恨)은 멍이 들어 아직도 남아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현상은 우리 집안과 사돈이라는 인연으로 남아 있다. 아픈 역사가 남긴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고교시절, 호남미(湖南米)는 맛이 없다고 가르치던 지리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고교시절 전라도 차별과 박해의 현장에서 분노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호남선은 박해의 상징이었다. ‘공장이 없는 곳에 호남선 복선은 낭비다’는 정권, ‘ 철도 복선도 안된 곳에 공장을 지어줄 수 없다’는 기업. 나는 이런 차별 받고 가난하고 낙후된 전라도에서 5,18을 대학 3년에 겪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호남선이 복선으로 깔리는 것을 보았다. 맞은편에 기차가 오면 비끼기 위해 간이역 정거장에 쉬고 있던 호남선 철도가 복선이 되었다. 하나의 철도선이 두 개로 늘어나면서 호남선 철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여수에 공단도 세워지고 있었다. 섬과 섬 사이가 연결되고 도로도 정비되기 시작했다.

 

시인 미당 서정주 역시 전라도 사람이다. 그 분은 시(詩)에서 당신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하셨으나, 그러나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분노였다.

 

그리하여 친척들과도 거리를 두고 산다. 신변을 정리하다 보니 삶이 이토록 간명(簡明)해질 수가 없다. 오직 나 하나의 삶만 바라보니, 세상의 시비(是非)가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애국가마저 친일의 굴레를 씌워 없애고자 하는 좌파의 무도함을 보면서,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기 위해 정계에 발을 디딜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 낮달처럼, 증조부님 3형제분이 남기신 효(孝)와 뜨거운 충정(忠情)만이 횃불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외롭게 떠나는 논객의 길 위에 따뜻한 위로였으리라.

 

2020. 10. 29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외부 필진 칼럼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
현재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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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30 [20:31]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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