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경기데일리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김성윤 칼럼] 왜 직언이 필요한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 표를 얻기 위한 속임수 인가?
 
김성윤 주필 기사입력  2020/11/24 [01:06]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문재인 대통령은 4년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 )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라고 하여 수많은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열광케 하였다. 

그런데 지금 어찌 되어 있는가?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다. 1년에 두 번도 기자들과 만남도 가지지 못하였다. 이거야말로 불통이 아닌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는 말도 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 위 통계에서 보듯이 사라지고 있다. 청와대 참모, 그 많은 자문위원회는 왜 대통령에게 소통을 건의하지 않는가?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왕실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다. 반면에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지 직언이나 충언을 하는 신하가 없었기에 결국 왕실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했다.

 

 나라의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잘못하면 그 참모가 부당함과 잘못을 고해야 한다.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잘못을 알려 주어야 한다. 친구가 잘못하면 가까운 친구가 잘못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도의가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직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조차도 직언은 결코 듣기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직언은 때때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보약이 되는가 하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듣기 좋은 말은 감언이설이 되어 모두의 총기를 흐려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첨을 조심해야 한다. 남을 칭찬해 주는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이 필요하다. 아무리 상대가 나를 추켜올리는 말이 듣기 좋다 해도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듣기 좋은 말에 이끌리다 보면 사리판별을 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약점이요, 허점이다. 따라서 감언이설이나 아첨의 말을 일삼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위정자들이 쏟아내는 공약이나 말이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아첨인가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한 속임수 인지를 구별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지식인들일수록 나라를 위해 대통령에게 충언하고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 정부에는 수많은 00위원회가 있다. 그들이 제 역할을 하였다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로 인한 국부의 낭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24번의 부동산 정책에도 이어지는 집값 파동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동산 3법의 모순과 부작용을 줄이고 국민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김해신공항 건설계획이 무산되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물론 나라 발전에 필요하다면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방 공항은 말만 공항이지 제 기능을 못 하는 공항이 너무도 많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투여할 10조7578억이나 되는 재정을 부산 시민의 미래 먹거리에 투자 하는 것이 부산시의 발전과 나라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건전한 나라로 가는 길이다.

 

 나라의 최고정책 결정과 집행을 하는 기관이 아첨하는 국회의원에 둘러싸이게 되면 대통령의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감언이설 하는 간신에게 둘러싸이게 되면 멀리 보는 눈을 잃게 된다. 그래서 소통이 적은 대통령에게는 직언이 필요하다.

 

직언이나 충고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충고는 일단 듣는 순간 기분이 안 좋다. 내용과 관계없이 기분이 언짢다. 누가 하든 관계없이, 듣는 순간 경직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약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에너지 문제나 부동산 3법에 대한 재정비 및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합리적인 직언과 충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중국의 역대 임금 중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우임금은 자기에게 충언해 주는 사람에게 고마운 절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성인이나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옳은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나 직언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 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그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위인이요, 참다운 윗사람이다. 직언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같다. 부드럽게 오랫동안 떨어질수록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20/11/24 [01:06]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