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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당신들은 정직하지 않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지도자와 대한민국의 운명
 
신성대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0/12/13 [21:40]
▲ 신성대 논설위원, 동문선출판사 대표    

 애국가 작사가인 윤치호 선생의 영문일기가 일부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의 영문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소상한 기록으로 더없이 소중한 역사자료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 일기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비할 만큼 귀중한 자료로 국가 보물로 지정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일부 번역된 그의 일기를 보면 그가 왜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일기를 썼는지 짐작이 갑니다. 한글 밖에 모르는 조선인이 읽기를 차마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어휘가 부족한 한글로는 표현에 장애를 느꼈거나 어차피 조선이 없어졌으니 한글도 없어질 것을 예상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일본어로 쓰지도 않았으니 일본인들이 읽는 것도 원치 않았나 봅니다. 언젠가 세계관이 열린 개화된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랬을 겁니다.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곧바로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시 나라가, 왕가가, 벼슬아치가, 선비가, 백성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거짓과 부패에 찌든 그의 부친과 친척들까지 가감 없이 흉보고 있습니다. 부패하지 않은 인간이 한 명도 없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골고루 잘 썩은 거지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거짓입니다. 왕부터 저 밑바닥 노비들까지 거짓말을 달고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거짓이 나쁘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민족이었습니다. 거짓과 위선, 야바위와 어깃장이 생존수단이었으니까요.

 

 다행히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 썩고 썩은 한반도에 선교사들을 보내어 복음과 함께 자유와 정직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배 당하는 동안 일본식 계몽교육을 받아 거짓이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해방 후, 그리고 동족상잔의 내전을 치루는 바람에 다시 거짓과 부패가 만연해졌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국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이 부패한 땅에 민주주의를 심을 수 있었고, 일제 식민교육을 받은 덕분에 일본어를 읽을 수 있어 선진 일본 기술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쉽게 익혀 일본을 뒤따라 산업입국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발칙한 주장에 당연히 애국시민들이라면 당연히 불쾌해 하고 반발하겠지요. 하지만 한번 솔직히 자문해 봅시다. 만약 일본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그전에, 어차피 망할 나라 조선이 하필 일본이 아닌 중공이나 소련에 먹혔더라면?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졌더라면? 한민족의 오천년 반도 역사는 그때 끝났을 테지요.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필시 중국이나 러시아의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열강이 아니었으면 조선이 스스로 개화되어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다? 아무렴 그런 주장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당장 북한을 보고도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아무래도 위선이지요.

 

만악(萬惡)의 근원, 거짓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교시(敎示)

  1.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2. 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을 백 번하면 참말이 된다. 

  3. 거짓말을 창조하지 못한 자는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 

  4. 거짓말은 클수록 좋다. 

  5. 공산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민주화란 단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외에도 “국가가 있는 한 자유는 없다. 자유가 있을 때는 국가가 있지 않을 것이다​.” “중산층을 맷돌로 으깨어버려라.” “더 이상 노력으로 계층상승이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라” “다수의 빈민층들이 가진 자들을 혐오하게 만들어라” “국가 공권력과 구호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 공산정부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게끔 조종하는 것이 공산당정권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등등 출처가 명확치 않은 그의 어록들이 작금의 대한민국에 소환되어 흘러 다닙니다. 

 

말 그대로라면 인간으로서 절대 태어나서는 안 될 인간이 태어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 사랑, 복지, 인권… 등등의 앞에는 항상 ‘(거짓)’이 묶음 처리되어있습니다. 해서 공산주의자들 입에서 나오는 건 숨소리 빼고는 다 거짓이라고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놈이 공산주의자가 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직하지 않아도 출세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 그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때부터 자신이 누구보다 똑똑한 줄 압니다. 그리고는 점점 뻔뻔한 아웃사이더(건달, 양아치)가 되어갑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 사회에선 잠시의 일탈이라 해도 정석대로 코스를 밟고 있는 친구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지요. 해서 공정한 게임은 무조건 싫은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정하게 출세한 엘리트들에게 콤플렉스를 느껴 어떻게 해서든 그런 잘난 인간을 끌어내려 짓밟아 뭉개려 합니다. 그런 걸 ‘적폐청산’이란 말로 포장하지요.

 

간혹 공산주의자들 중에 공부를 제대로 하는 친구들이 중도에 전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거짓과 진실이 상충되기 때문이지요. 공부란 진리와 진실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혁명은 거짓말 몇 마디로 민중을 선동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거짓말이기 때문에 책임질 생각은 애초부터 없고 그로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권력을 잡으면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으면 되니까요. 해서 공산주의는 독재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거짓을 덮을 더 큰 거짓을 반복하다가 감당 못할 쯤에 이르러 제 풀에 망하게 되는 겁니다. 

 

▲  북한 행사 장면    © 연합뉴스

 

길들이기 쉬운 한민족

 

요즘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를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밉니다. 더 분통이 터지는 건 거기에 놀아나는 위정자들의 비굴한 자세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를 하기 딱 좋은 토양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금 같은 초문명시대에 삼대 세습 동물농장을 하고 있는 북한이 그 증거가 되겠습니다. 누천년을 사대해서 등이 굽은 민족입니다. 

 

남의 나라를 단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백성들이 기근으로 다 죽어나가도 그저 초근목피로 연명할지언정 강이나 바다를 건너가 노략질이라도 해서 제 백성을 먹여 살릴 줄 몰랐던 못난 양심민족! 그러면서 동족을 노예로 부리던 야만민족입니다. 

 

비록 반쪽이지만 이런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하게 된 건 기적입니다. 근자에 잠시 일본에 식민지배를 당하는 바람에 겨우 독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나마 반도의 북쪽 반은 과거 봉건전제주의보다 더 지독한 인민노예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민주(民主)가 아니라 독주(獨主)가 되어버린 겁니다. 순종과 체념은 노예의 미덕! 뼈 속까지 배인 노예근성으로 인해 동물처럼 곱게 길들여졌습니다.

 

기실 노예가 비굴하고 천한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체면이니 도리니 염치니 하는 것은 사치이지요. 일을 적게 하고 배부르게 받아먹는 것은 노예에겐 은혜입니다. 노예나 하인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자격도 책임도 없습니다. 책임지겠다는 말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오직 복종과 변명·핑계만 허락될 뿐입니다. 

 

하지만 주인장은 그럴 수 없습니다. 권한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인은 남 탓할 수가 없습니다. 변명하거나 핑계댈 곳이 없습니다.

 

노예는 가치를 모릅니다. 몰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주인장으로 사는 사람의 태도이지 노예와는 상관없는 태도입니다. 아니든 기든 상관없이 저한테 관대하면 무조건 좋고 옳은 겁니다. 집안이 망해도 나라가 망해도 주인이 망하는 것이지 노예가 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노예는 망하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제 것이 없으니까요.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지요. 이 주인이 망하면 저 주인을 섬기면 그만이니까요. 노예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은 제 목숨 하나밖에 없습니다. 노예는 가격만 있을 뿐이니까요. 애굽에서 제 민족을 끌고 나온 모세가 광야를 40년 동안 떠돈 것도 바로 이 노예근성을 떨쳐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머지않은 과거의 대한민국은

 

현재의 2030세대들은 대한민국이 원래 지금처럼 거짓과 부정이 없는(적은) 비교적 깨끗한 나라인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불과 2,3십년 전의 부정, 부패, 부당, 불결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지요. 해서 중국이나 동남아 여러 후진국이나 개도국 등에서 일어나는 부정한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찹니다.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깜박 놓고 왔다가 한참 후 그 자리에 가보니 그대로 있더라? 그런 일은 일본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고 부러워했었습니다.

 

불과 2십년 전만 해도 운전하다 교통순경에게 걸리면 딱지 대신 줄 돈을 운전면허장과 함께 준비해둬야 했습니다. 사고가 나면 잘잘못을 떠나 순경 주머니에 먼저 지폐 몇 장이라도 찔러 넣어주어야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촌지를 안주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공장을 하건 사업을 하건 식당을 하건 구청 인허가 담당이나 보건소, 경찰서, 소방서 등에서 정기적으로 수금하러 나왔지요. 명절이면 청소부들도 떡값을 달라고 돌았습니다. 술집이나 다방은 동네 양아치들한테 시도때도 없이 뜯겨야 했습니다. 

 

그러니 관공서나 은행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그 많은 룸살롱이 매일 밤 넘쳐났습니다. 어지간한 중소기업이면 접대 담당 술상무를 따로 둘 정도였지요. 골프를 못 치면 사업을 할 수 없는 줄 알았습니다. 곗돈 떼먹고 야반도주하는 일은 비일비재였습니다. 점원들이 물건을 뒤로 빼돌리는 걸 적당히 못 본 척하지 않고는 상점 운영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은 밀수품과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몰염치, 새치기, 뒷돈, 백, 야바위, 공갈, 사기, 도박, 협박, 협잡, 청탁, 묵인… 그렇게 서로 뜯어 먹고 빨아 먹고들 살았습니다. 정직하게 살겠다는 건 불이익과 가난을, 그리고 어리석은 자라는 멸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게 싫은 사람들은 이민을 떠났지요.

 

조선시대 내내 선비들에게 청렴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나마 명문가 사대부들이야 가문의 명예라도 빛낼 수 있어 청렴한 척이라도 했지만 말단 하급관리들이나 힘없는 백성들이야 청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가난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착취당하려니 거짓과 속임이 그대로 처세술이자 생존수단이어야 했습니다. 

 

하도 착취를 당하다보니 거짓과 변명으로 상전이나 타인을 속이는 것에 대해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가난하면서 염치를 차리고 정직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필시 바보가 아니면 성인일 테지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IMF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선 중산층이란 말이 사라졌습니다. 요즘은 한국 중산층의 대표지역인 서울 강남에서조차 중산층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강남좌파란 말이 그 자리를 매웠습니다. 중산층은 곧 주인층, 주류층, 주도층이란 말과도 상당 부분 그 의미가 겹칩니다. 근 천년 동안 사대, 노비, 노예로 살던 한민족이 식민지배에서 해방되고 배고픔을 벗어나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 간신히 주인의식 비슷한 자부심을 가져보려다 그만 IMF금융위기로 도로아미타불 민초‧민중으로 추락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좌파들이 지금 이 나라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실 중산층이 두터워야 지속가능한 제도입니다. 고대든 현대든 민주주의는 그 사회의 중산층 시민들에 의해 생겨난 제도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중산층 정도 되었다고 자부할 때에야 주변을 돌아보고 이 사회의 주인장 비슷한 느낌(철학)을 가집니다. 제국주의 바람이 지나가고 해방된 수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혼돈 속에 결국 뿌리를 못 내리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독재로 흐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공산체제에선 당과 인민이 있을 뿐, 중산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근 백 년 동안 온갖 역경을 헤치며 앞으로 잘 나아가던 한국호가 마치 해적들에게 강탈되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는 듯 갑자기 진로를 잃고 기우뚱거리고 있습니다. 

 

처음 약속과는 달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거짓말, 선동, 위선, 억지, 변명, 핑계, 책임회피, 방관, 방조, 억지, 떼쓰기, 조작, 고소, 고발! 말 그대로 아수라장입니다. ‘양아치’란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정자들이 이 위대한 나라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야바위는 양아치들의 전매특허이지요. 공정하고 신성해야 할 법은 이미 거짓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도로 대한제국입니다.

 

‘거짓’은 공산주의자들의 양식

 

성경에는 ‘정직하라’는 말이 끝도 없이 나옵니다. 정직은 기독교의 절대가치 중의 하나입니다. 당연히 정직 없이는 구원도 없지요. 기독교는 ‘정직’의 반석 위에 공의와 정의를 세워왔습니다. 정직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거짓과 실수는 다릅니다. 

 

거짓은 인간이 감정적으로 용서할 일이 아닙니다. 그 순간 공의와 정의가 다 무너지고 맙니다. 해서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어도 거짓된 자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직’은 빛이자 소금이자 방부제입니다. 정직과 거짓!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겠습니다.

 

지금 거짓이 대한민국 사회에 장마철 곰팡이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무능한 지도자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는 절대 용서받지 못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해서 쫓겨났지만,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무능해서 쫓겨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능은 그런 자를 잘못 고른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용납될 수도 용서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도구를 다루는 동물,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들 말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면 인간은 속임수를 쓰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신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동물입니다. 그 인간의 참된 마음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비겁한 양심이 아니라 용감한 양심, 정직한 양심이어야 합니다. 체념과 방관은 민주주의의 독입니다. 비겁한 민중이 정직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듭니다. 주인의식 없는 민중이 독재자를 만듭니다. 정직한 용기만이 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하나!

 

대한민국이 예서 꺾여 주저앉을 순 없습니다. 갈 길이 아직 멉니다. 이 정도에서 경제민주화니 복지니 하면서 기업을 뜯어내어 기업가나 노동자가 똑같이 공평하게 살자고 하는 것은 알 낳는 암탉을 잡아먹는 것과 다름없는 짓입니다. 

 

서민이나 하층민도 열심히 하면 기업가가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성취 욕구를 북돋워주는 것이 진정한 자본주의 자유경제입니다. 그렇게 중산층을 두텁게 할수록 민주주의가 굳건해집니다. 그게 선진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중국이 장차 제아무리 부강해져도 민주주의를 할 수 없고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공산당은 그 근본에서부터 결코 정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둥은 기업이지 정치집단이 아닙니다.

 

1995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라고 솔직한 말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정치가 4류면 민격(민도)도 4류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5류쯤 되겠습니다. 문제는 그런 5류 정치인들이 국민을 짐승쯤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백주 대낮에 벌거벗고 임금님놀이를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천박한 놀이를 반기는 절반의 시민들이 있다는 것도 어이없습니다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인 2014년 신년사 말미에 ‘가치’ ‘품격’ 경영을 주창했습니다. 기술 일등, 품질 일등을 이루고서야 비로소 ‘일등’과 ‘일류’가 완전히 다름을 인식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분의 유언이나 다름없는 이 마지막 당부를 이해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정직경영, 품격경영이 곧 가치경영입니다. 어찌 기업만이겠습니까?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관료든 노동자든 모두가 정직의 바탕 위에 가치경영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일류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난 과거가 어찌되었든 대한민국이 지금 이만큼의 경제적 성취와 정직사회를 건설해낸 건 기적입니다.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기실 지난 백년이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찬란했다는 말입니다. 더없이 비참한 격동의 세월을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낸 성과입니다. 한데 왜 이제 와서 그 영광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까? 

 

스스로 홍익인간임을 자처하지만 언제 이 민족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 적이 있었습니까? 이제부터입니다. 전 세계 모든 미개국과 개도국이 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들에게 희망입니다. 바야흐로 이 민족이 인류문명을 선도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공평과 평화에 안주할 때가 아닙니다. 그런 건 가치가 못됩니다. 공평하고 평화롭기는 북한만한 나라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런 북한이 부럽습니까? 우린 끝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대한민국은 정직하고도 잘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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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13 [21:40]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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