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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열 칼럼] 소 한 마리 품고 살아가야
우답불파(牛踏不破)와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살자
 
조상열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1/01/14 [14:24]
▲ 조상열 칼럼니스트, 대동문화재단 대표     

 한 생명이 태어나고 한 생을 살아가는 뜻의 한자가 ‘생(生)’이다. 생자는 ‘새싹이 땅 위로 솟아나 자라나는 모습을 형상한 글자’다. 이 글자를 달리 보면 소 우(牛) 아래 한 일(一)을 합한 글자인데, 고대 농경사회 사람들이 소와 일생을 함께 한다는 공생(共生)의 뜻이 담긴 한자로 보인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우리 민족과 함께 2천여 년 넘도록 함께 생활해 오면서 뭇 축생과 달리 생구로 대접을 받아왔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면, 생구(生口)는 그 집의 하인과 머슴처럼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근면과 끈기, 고집과 뚝심, 우직함, 부의 상징 등으로 평가되는 것이 소라면, 하인과 머슴은 과묵과 성실, 충직을 최고로 여긴다는 점이 서로 유사하다. ‘쇠고집’, ‘쇠귀에 경 읽기’, ‘소는 믿고 살아도 종은 믿고 못산다’,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아내에게 한 말은 난다’는 등은 소의 특성을 잘 말해고 있다.

 

 소는 농업경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재산이자 최상의 음식 재료로 농가의 밑천으로 여겨왔다. 속담에 ‘닭 잡을 손님 있고, 소 잡을 손님 따로 있다’는 말은 소가 최고의 음식으로 쓰인 귀한 존재였다는 말이다. 또 ‘개잡아 먹은 흔적은 있어도 소 잡아먹은 흔적은 없다’, ‘소 뼈다귀 삼년 우려 먹는다’, 등은 버릴 데 하나 없다는 소의 가치를 말해준다.     

 

▲ 황소     © 박익희 기자

 

‘옛날 천제가 뭇짐승들에게 설날 아침 세배하러 달려온 순서에 따라 12등까지만 입상하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달리기라면 자신이 없었던 소는 남보다 일찍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모두가 잠든 그믐날 밤에 길을 나선다. 이때 쥐가 소의 전략을 알아차리고 소꼬리에 달라붙었다. 

 

소는 설날 동이 틀 무렵 상제의 궁전 앞에 도착을 했고 문이 열리는 순간, 쥐가 잽싸게 소의 한 발 앞으로 뛰어내려 제일 먼저 문안에 들어섰다. 밤낮없이 우직하게 달려 온 소는 약삭빠른 쥐에게 일등을 놓치고 두 번째가 되었다.’ 12간지 순서와 소의 부지런함을 말해준다. 

 

 신화에 의하면 농업과 의약을 대표하는 신으로 염제(炎帝)를 꼽는다. 신농(神農)이라고도 불리는 염제의 생김새가 머리는 소 형상에 손에는 이삭과 채찍을 쥐고 있다. 이삭은 농업의 신, 채찍은 약초를 감별하는 도구로서 의약의 신임을 보여 준다. 

 

 신에 대한 제사와 흔종(釁鐘)에 쓰는 소를 ‘희생(犧牲)’이라 한다.

<맹자> 양혜왕 편에 어떤 신하가 소를 끌고 왕 앞을 지나가는 것은 본 왕과 신하간의 문답이다. 왕이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신하가 “도살하러 갑니다. 이 소를 잡아서 피를 새 종(鐘)에 칠하는 흔종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내 차마 그 소가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로 가는 것을 볼 수가 없구나, 소를 살려 주거라”, “그러면 앞으로 흔종의식을 폐할까요?”, “어찌 오랜 전통을 폐할 수 있는가. 양을 소 대신 쓰도록 해라.” 양으로써 소를 바꾼다는 이양역우(以羊易牛)다.

 

이때부터 양은 의식 때마다 소를 대신해서 죽어가는 억울한 운명이 되었으며, 여기서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 비롯되었다. 

 

농사에 소중한 존재로서만이 아닌 신성한 의식에 희생으로 사용했던 소는 함부로 잡아먹지 못하게 한 금단음식이었다. 음복 때도 왕과 대신들이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백성들은 겨우 죽은 소고기나 먹을 수 있었으며, 만일 살아있는 소를 도축한다면 극형에 처해졌다. 때문에 소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다면 과식을 일삼았는데, 당나라 시성 두보의 사망 사유가 소고기 과식 탈이 원인이란 것이 흥미롭다. 

  

소들은 왜 절로 찾아갔을까

 

 사찰 대웅전 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우도(尋牛圖)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친 소를 길들이는 과정에 빗대어 그린 선화(禪畵)다. ‘참 나’를 찾아가는 인간의 깨달음의 과정을 소에게 의탁해서 10단계로 구분해 그린 탓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지난해 집중 호우 때 소들이 구례 사성암(해발 531m)으로 피신했던 모습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굳이 소들이 사성암 절로 찾아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큰 홍수로 강물에 빠진 소와 말이 살아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살펴보면 배울 점이 많다. 말은 거센 강물 속에서도 질주본능으로 헤엄을 치며 강가를 향해 돌진해간다. 강기슭에 이르러 물살 소용돌이에 도로 밀려 떠내려가고, 다시 강가로 돌진하다 떠밀려 진퇴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다가 결국 익사하고 만다. 

 

반면 소는 물살이 거세게 밀려오면 그 물살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다. 마치 새가 몸을 바람에 의탁하여 수 천리를 날아간 것과 같은 이치다. 몸은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면서 강기슭으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다가 마침내 엉금엉금 뭍으로 나오면서 스스로 생명을 구한다. 말은 자신의 헤엄실력만 과신하다 지쳐서 죽지만, 헤엄이 서투른 소는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도 않고 자연적 흐름에 순응하면서 살아나는 생존의 지혜를 보여준다. 

 

말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다보면 결국 지쳐 스러지고 만다. 가끔은 뒤돌아보면서 쉬엄쉬엄 가는 것이 멀리 가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다. 살다보면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면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지 말고 우직한 소처럼 흐름을 따르는 여유와 지혜가 있어야 한다. 

 

 남명 조식은 출사 차 하직인사를 온 제자 정탁에게 뒤뜰에 소 한 마리 매어 놓았으니 끌고 가라며 우(牛)자를 써준다. 처음 출사하는 제자가 평소 기가 세고 조급한 성미라서 넘어져 다칠까 늘 염려되었던 스승은 제자에게 소처럼 둔중(鈍重)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는 가르침을 준 것이었다. 

 

훗날 정승까지 오른 정탁은 그때 스승이 주신 소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오늘에 이르렀노라고 회고했다. 옛 스승들은 행동이 우둔한 자에게는 마(馬), 게으르고 늦잠을 자는 자에게는 계(鷄), 효성이 부족한 자에게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오(烏), 조급하고 서두르면 우(牛)자를 써 주었다. 

 

 새해는 우답불파(牛踏不破)와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소가 밟아도 깨지지 않는 견고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만 오래도록 멀리 간다. 호랑이처럼 신중하고 날카로운 눈빛과, 소처럼 침착하면서 우직하고 뚝심 있는 마음가짐만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슬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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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14 [14:24]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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