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종합뉴스 > 교육/문화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아름다운 명시] 빛나는 눈동자 -신동엽-
 
데스크 기사입력  2021/01/14 [17:34]
▲ 합천 황매산 은하수     © 강희갑 사진작가

 

빛나는 눈동자  

-신동엽-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魂)을 

갈가리 찢어 

꽃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孤孤)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주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昇天)이다 

 

어제 

발버둥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의 세상을 밟아 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은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至上)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여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 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의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눈 

깊게. 높게. 

땅속서 스며나오듯한 

말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 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 

오, 인간정신 미(美)의 

지고(至高)한 빛.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21/01/14 [17:34]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