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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조 칼럼] 공직자와 사불삼거(四不三拒)
 
권해조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1/04/03 [00:02]
▲ 권해조 예비역장성, 한국국방외교협회 고문     

우리는 예로부터 청렴하고 청빈한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으며 특히 공직생활에서 불문율(不文律)로 여겨왔다. 우리 역사상의 황희정승을 비롯한 여러 청백리상(淸白吏賞)들의 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은 조선 영조 때 호조서리(戶曹胥吏)를 지낸 <전설의 아전(衙前)>으로 부르는 김수팽(金壽彭)의 사불삼거(四不三拒)애 대한 이야기이다. 이 내용은 소설가 이수광이 쓴 잭 「조선의 방외지사(方外志士)」에도 나온다.

 

한번은 호조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서 결재를 미루자, 아전인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서 판서의 바둑판을 확 쓸어버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달라”고 하니 판서도 죄를 묻지 못했다.

 

또한 김수팽이 숙직하던 밤에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금을 요청했다. 그는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고서야 돈을 내주었다.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관이 사형에 처할 일이라 생각했으나 영조는 오히려 김수팽을 기특하게 여겼다.

 

김수팽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염색업을 부업으로 한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김수팽은 염료통을 엎어버렸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데 부업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야?”며 화를 냈다.

 

이와 같은 김수팽의 일갈(一喝)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 있다.

 

평소 김수팽은 ‘사불삼거(四不三拒)’를 불문율(不文律)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관리가 제임 기간에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할 네 가지(四不)와 꼭 거절해야할 세 가지(三拒)이다.

 

먼저 4불은 (1) 부업을 하지 않고 (2) 땅을 사지 않고 (3) 집을 늘리지 않고 (4)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조선조 연산군 때 풍기군수 윤석보(尹碩輔)는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을 팔아 채소밭 한 떼기를 산 것을 알고는 사표를 냈다. 조선조 중기 대제학 김유(金楺)는 지붕 처마 몇 치도 못 늘리게 했다.

 

다음은 꼭 거절해야 할 3가지이다.

(1)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2)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3) 경조사의 과한 부조 이다.

청송부사 정붕(鄭鵬 :1469-1512 )은 영의정이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잣나무는 높은 산위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 속에 있다”고 답을 보냈다. 조선후기 문신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은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무명한필을 보내온 지방관을 벌주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선생의 「목민심서」를 보면 '청렴은 목민관(牧民官)의 본무(本務)요, 모든 선(善)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청렴(淸廉)은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청렴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의 실태를 보면 조선시대 공직자들의 <사불삼거>의 불문율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우리시회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LH토지주택공사의 부동산 투기사건이나 고급관료 인사청문회를 보면 오히려 사필(四必)이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인사청문회를 보면 (1) 위장전입 (2) 세금 탈루 (3) 병역면제 (4) 논문표절이 주종을 이루며, 이 네 가지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고위 공직자 후보가 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청문회서 잘못이 밝혀진 경우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세상이 돼버렸다. 우리 젊은이들이 볼 때 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고 매우 우울해 진다.

 

따라서 그때나 지금이나 공직자에게 청렴과 윤리의식은 참으로 중요하다.

공무원이 청렴 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 신뢰가 없으면 정책 실행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조선시대 아전(衙前)이란 각 관청에 근무하던 하급관리이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전만도 못한 고급관리들도 많다.

 

앞으로 우리사회의 지도자와 공직자들은 옛 선조들의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지혜를 배우고 이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청렴의식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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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4/03 [00:02]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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