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신성대의 혼백론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신성대의 혼백론 28] 전생(前生)이야기
 
신성대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1/05/06 [11:47]
▲ 신성대 논설위원, 동문선출판사 대표     

전생(前生)이야기

 

제 정신 온전히 지니고 살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필자가 자주 겪는 일이지만, 오래 전에 뭘 공부한다는 젊은 친구가 찾아왔기에 두어 번 만나준 적이 있었다. 그 방면에 별로 아는 것은 없었지만 인상도 밝아 아직 때가 덜 묻었나보다 했었다. 언제 또 찾아오겠거니 했더니 소식 없다가 5년이 지난 어느 날 찾아왔는데 사람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동안 그 방면에 공부한답시고 지리산으로 어디로 전국을 쏘다니면서 또래의 온갖 도사(道師)들을 만나 이것저것 잔뜩 동냥해 와서 식자연(識者然)하는데 차마 말을 섞기 싫어 서둘러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완전 사자(邪者)가 되어 있었다.

 

세상 천지에 늘여있는 하고 많은 지식과 지혜들 중에서 어쩌면 그렇게 사자(詐字)들만 골라 주워 담아 왔는지! 필자가 평생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이바구들이지만 정작 그 친구는 그게 자기 말인지 남의 말인지 구분조차 못하고 있었다. 선입견(先入見)이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컴퓨터라면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다시 깔 수 있지만 사람은 그게 절대 안 된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그걸 들고 여기저기 남을 가르치러 다닌단다. 예전에 선생께서 누구라 하면 알만한 꾼들을 앉혀놓고 “네놈들 입에서 나오는 건 숨소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며 핀잔주든 모습이 떠올라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어디 그 친구뿐이겠는가? 요즘은 대학에서도 갖가지 방술과목들이 생겨났는데, 혹시 그쪽 사람들은 뭔가 좀 다를까 싶어 행사나 학회에 한두 번 참석해보고는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않는다. 시간 버리고 귀만 더럽혔다. 제도권까지 야바위학으로 잔뜩 오염이 되었다.

 

▲     © 신성대 논설위원

 

그런가하면 요즘 ‘전생’이야기가 시중에 감기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이제는 단골 소재다. 뭣 좀 한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기 전생을 보았단다. 어린아이라면 그냥 흘러듣고 넘기겠는데 다 큰 어른들이 도대체 뭣 하는 짓들인지? 왜 미치지 못해서 안달인지 참 답답하다.

 

 한 친구는 자기가 전생에 신라 때 무슨 공주였다고 한다. 멀쩡하던 친구가 어떤 무리들과 휩쓸려 다니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데 농담이 아니란다. 누가 그러든? 뭐, 다 아는 수가 있다나. 재차 추궁하자 누군가가 봐줬단다. 사는 게 얼마나 허(虛)했으면 그딴 걸 화두로 붙들었을까 싶다가 일순 한심하고 미운 생각이 들어 필자가 되물었다. 그래? 그렇게 대단한 재주를 지녔으면 왜 전생만 봐준데? 내생(來生)도 좀 봐주지? 내가 보기엔 공주가 아니라 공주 시중들던 무수리 같은데! …? 진짜라니깐! 설마 애비가 제 딸도 못 알아보겠어? 내가 그때 왕이었다니깐! 어머, 정말요? 선생님도 그런 거 볼 줄 아세요?

 

나, 참! 그냥 우스개로 넘기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사고의 알고리즘이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철학이 안 되는, 과학이 안 되는, 상식을 언제든 뛰어넘는, 귀 얇은 한국인들이 매사에 덤벙대고 허우적거리는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주동적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그저 노비나 소작인으로 살아온 타성이 몸에 밴 탓이리라.

 

 왜 하필 천 년을 훨씬 뛰어 넘어 신라 공주래? 그럼 그때 죽었다가 이제 처음 환생한 거네? 윤회한다며? 그동안 뭐했데? 대충 잡아도 44번은 나고 죽었을 법한데? 연옥에 머물다 왔나?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다 왔나? 뭐 저승에선 하루가 인간세계의 천 년이라도 된다든? 아니면 중간에 개나 돼지로 수백 번 살다 이번에 간신히 인간으로 태어났나? 신라 공주 이전 전생은 또 뭐였데? 그나저나 왜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데 남녀 성은 안 바꿔준데? 설사 그렇다 치자! 그래서 뭐 어쨌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멀쩡한 사람 한 순간에 병신 된다.

 

야바위와 돌팔이에게 걸려드는 이유

 

 노비는 주인 앞에 무조건 복종하고 엎어진다. 주인님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다. 노비에겐 어떤 일에 대해 회의를 가지거나 판단하고 결정할 자격이 없다. 책임질 일도 없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자체가 없다. 변명과 핑계만 허용될 뿐이다. 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어서 다른 누군가가 옆에서 잘못을 지적하거나 더 나은 길을 일러줘도 절대 안 고친다. 독립을 시켜줘도 스스로 결정을 못하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한다. 물론 그 의미도 모르지만 알려고도 안 한다. 오르지 자기 것만 뺏기지 않으면 된다. 해서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선 또 다른 제 주인(스승? 절대자?)을 찾아나서 그에게 절대복종한다.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고민하길 싫어하는 노비민족은 일상적인 문제에서도 단정적으로 확답을 잘 내린다. 그러고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지만 신문이나 책에 그렇게 났다거나, TV에서 어느 교수가 그랬다는 식이다. 전생도 제 선생이 봐줬단다. 아무렴 그러고 나면 왠지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점점 신라 어느 공주와 자기 삶이나 생김새가 비슷했던 것으로 자기최면에 빠져들다가 확신을 가지게 된다. 오천년 역사가 아니라 당장 제 주변을 조금만 뒤져도 저하고 비슷한 인생들 수두룩하게 나온다. 가령 태극기나 촛불 들고 광화문에 모인 여성들 붙들고 당신은 전생에 유관순이었다고 해주면 아마 열에 다섯은 갸우뚱하고 넘어갈 것이다.

 

 ‘전생’이란 말 자체가 과학적인 용어가 아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완전 사어(詐語)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팔아먹은 스승은 이미 야바위꾼이다. 만약 자기가 신봉해 마지않는 그 스승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신뢰(신앙)하지 않는 사람이 제 전생을 봐주면 곧이 믿을까? 아무리 믿고 따르는 스승이라 해도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의심을 해야지만 이미 눈이 멀어 복종하는 처지가 되면 절대 그러질 못한다. 아무리 황당한 헛소리라도 스승의 말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건 곧 배신이자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신앙과 신뢰는 별개가 아닌가? 같은 ‘믿을 신(信)’자가 들어가지만 ‘앙(仰)’이 들어가는 순간 편견이 되고 만다. 자연에서는 앙(仰)이 없다. 앙(仰)은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헛짓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구라’다. 이런 사자(邪字)가 자꾸 늘어나면 결국 난세가 온다. 

 

 전생이니, 윤회니, 천당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극락이니… 하나같이 설득의 방편(도구)으로 고안해낸 상상계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분명 미련한 중생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런 걸 고안해 냈을 것이다. 본디 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러니 악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는 것일 게다. 헌데 그렇게 타일러서는 도무지 먹히지 않으니 할아버지가 귀신 이야기로 손자를 계도하듯이 고안해낸 것들이다. 신화란 것도 마찬가지다. 억지인 줄 알면서도 그 선의를 알기에 묵인해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게 부지불식간에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달을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손만 보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본질은 외면한 채 엉뚱하게 방편을 물고 늘어진다. 전생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쩔 건데? 그래서 네 주제가 바꿔지나? 이런 잡것이 먼저 플랫폼에 깔려버리면 공부든 수행이든 이미 틀렸다. 지식이 많아야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며, 지혜롭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다.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다시없을 인생 그나마 귀하게 사는 거다.

 

 아무튼 우리가 ‘지식’이라고 하는 문자식(文字識)에는 누천년 인류가 쌓아온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뒤섞여 있다. 시중에는 증명되지 않은 속설들이 범람하고 있다. 대부분 현대 과학적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 무식 때문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무지하면 몸이 고달프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21/05/06 [11:47]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