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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오천항과 충청수영성 아름다운 '영보정' …천하 절경으로 손색 없다.
누각 안에는 다산 정약용의 감동적인 글 '永保亭宴游記(영보정안유기)'
 
박익희 기자 기사입력  2020/12/03 [13:25]

 코로나 괴질로 집콕만 하다가 답답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찾은 곳이 충남 보령의 오천항이다.

 

아름다운 오천항은 얼마전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을 촬영한 곳으로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 오천성이 남아있는 곳으로 주꾸미 낚시꾼들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 오천항 위쪽에는 아름다운 영보정 정자가 있다. 이곳에 다산 정약용의 지은 글이 걸려있는데 그 내용이 감동적이다.    © 박익희 기자

 

그런데 오천항에서 보기에도 규모가 큰 정자가 있어 단숨에 정자에 올라 절경을 감상했다. 탁트인 위치에 있어 조망하기에도 좋았지만 앞에도 산이 있어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항구이자 군사요충지로서의 오천성이었다. 또한 근처에 갈맬못 가톨릭 성지가 있다. 

 

그곳에는 천하제일이라는 서각 글씨와 다산이 파직을 당하여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유배자로서의 애잔한 심정을 엿보고 임금을 그리워하고 자기를 알아주는 선비를 그리는 글이 감동을 주었다.

 

다음은 다산의 남긴 글을 유명한 서예가인 근당 양택동(한국서예박물관 박물관장)선생님께 의뢰하여 번역한 글의 전문을 소개한다. 

 

▲茶山이 지은 '永保亭宴游記영보정안유기'     © 박익희 기자

 

茶山이 지은 '永保亭宴游記영보정안유기'

 

世之論湖石亭樓之勝者 必以永保亭爲冠冕 昔余謫海美 嘗有意而未至焉 乙卯秋 始從金井獲登斯亭 豈於亭有分哉 余方以好奇遭貶 然凡天下之物 不奇不能顯 觀乎永保之亭 知其然也 山之在平陸者 非尖削峻截 不能爲名 唯突然入水如島 則雖倍塿之隆 亦奇也 水之由江河而達于海 勢也 雖泓渟演漾 不足稱 唯自海突然入山爲湖 則不待波蘭之興 而知其奇也 姑麻之山 西馳數十里蜿蜒赴海中 如鶴之引頸而飮水 此所謂山之突然入水而如島者也 姑麻之湖 東匯數十里 環以諸山 若龍之矯首而戱珠 此所謂水突然立山而爲湖者也 永保之亭 據是山而臨是水 以之爲一路之冠寃 則曩所謂物不奇不能顯者非邪 時節度使柳公 爲余具酒醴 而太學生申公 詩人也 値中秋月夜 汎舟姑麻之湖 轉泊寒山寺下 復有歌者蕭者 與登寺樓 令作流商刻羽之音 余遷客也 愀然有望美人天一方之思 竝書此以爲永保亭記

 

# 游(놀 유)는 遊와 같이 쓰이는 字

 

▲ 영보정 모습     © 박익희 기자

 

세상에서 호수나 바위 정자와 누각의 뛰어난 경관을 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永保亭을 으뜸이라 한다. 내게 예전에 이곳 海美(해미)로 유배되었을 때는 영보정에 가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을묘년(1795년) 가을쯤인가 金井(홍성 금정리)에서 출발하여 이 정자에 오를 수 있었으니 어찌 인연이 아니랴.

 

나는 그때(1790년) 기이하게도 무엇에 홀려 빠져들다가 유배를 당하였으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기이하지 않으면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으니 이 영보정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이란 육지에 있으면서 산세가 깎아지른듯 험준하지 않고서는 유명한 산이 못된다. 하지만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가 섬처럼 된다면 작은 언덕만큼 솟아올라도 기이하게 보이는 것이다.

 

시냇물이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르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형세이다 보니까 비록 넘쳐흘러 깊은 물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갑자기 바다가 산으로 들어가 호수가 되면 파도가 치지 않아도 기이하다 할 것이다.

 

姑麻山(고마산)은 서쪽으로 수 십리를 달려 구불구불 바다 속으로 들어가 마치 학이 목을 길게 늘여 물을 마시는 모습이니 이것이 바로 산이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가 섬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姑麻湖(고마호)는 동쪽으로 수 십리를 흘러가 산들이 빙 둘러쳐져 마치 용이 머리를 치켜들고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이니 이것이 바로 물이 갑자기 산으로 흘러들어가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永保亭(영보정)은 이처럼 기이한 고마산에 자리하고 기이한 고마호를 굽어보고 있어 이 지역의 으뜸이 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사물은 기이하지 않으면 세상에 이름을 드러 낼수 없다’라는 것이 아니랴.

 

이때 절도사 柳公(유공,柳心源유심원)이 나를 위해서 술과 안주를 마련해 주었고 太學生태학생(申宗洙신종수)는 시인이었다. 때마침 한가위 휘영청 달 밝은 밤이라 고마호에 배를 띄워 놀다가 한산사로 가서 정박하였다. 그런데 노래를 잘 하는 사람과 퉁소를 잘 부는 사람이 있어 같이 한산사의 누각에 올라 그들에게 아름다운 연주를 부탁했다.

 

나는 좌천당한 나그네 이지만 걱정스럽게도 저 하늘 먼 곳에 계시는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 아울러 그 그리움도 함께 담아서 영보정의 글을 짓는다.

 

 -삼무재에서 근당-

 

▲ 영보정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멀리보이는 둑은 보령 방조제입니다.     © 박익희 기자

 

▲  충청수영성  사진 이모저모 © 박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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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03 [13:25]  최종편집: ⓒ gg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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