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경기데일리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상열 칼럼] 땡초가 사고를 냈다
내장사 대웅전 방화사건의 안타까움
 
조상열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1/03/19 [11:11]
▲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시대를 불문하고 사고가 일어난 곳에는 그 조직에서 소외된 이들이 그 중심에 있곤 한다. 지난 3월 5일, 내장사 승려가 대웅전에 방화를 저지르게 된 것도 소외감이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학교폭력이나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비(似而非) 종교 세력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고의 재앙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탐욕이 그 발단이다. 

출가수행자인 승려가 자기 절에 불을 질렀다는 뉴스는 충격 이상이었다. 불타는 대웅전 모습에 2008년 화염 속 숭례문이 오버랩 되면서 몸서리가 쳐졌다. 한 사람이 품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대한민국의 상징인 숭례문 방화로 이어졌고, 그로인해 온 국민이 받은 충격과 비통함이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말이다.

 

내장사 방화범인 승려 최씨는 스스로 대웅전에 불을 질렀다고 신고했고,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그간 스님들과의 불화로 술을 마신 뒤 우발적으로 불을 질렀다.”라고 진술했다. 승가대학을 마친 최씨는 3개월 전 내장사 수행승으로 들어왔다. 수행 승려가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 그것도 자기 절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질 죄에 해당한다. 이는 이판사판 말세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가 싶고, 최씨는 승려가 아닌 속칭, '땡초'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원래 승려(僧侶)는 불교의 출가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스님, 승, 중이라고도 한다. 스님이라 말은 스승님의 준말로 승려들이 진리를 밝혀주는 스승의 역할을 담당했기에 높여 부른 존칭이다. ‘땡초’, ‘땡추’는 본래 무리, 또는 집단을 뜻하는 ‘당취(黨聚)’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취’는 고려 공민왕 때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스님들의 비밀 결사 조직이었다. 허나 조선 시대에 들어 불교가 탄압을 받고, 양반들이 스님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 땡초, 땡취 등의 비속어로 부르면서 부정적인 뜻으로 변했다. 

 

실제로 조선 중기에 와서는 수행에 관심 없던 무자격 승려들이 당파를 짓고 세력을 키워 학승을 괴롭히고, 음식과 의복, 물자 등을 탈취하는 등 못된 짓을 일삼는 건달패나 다를 바 없는 집단이었다. 

 

건달이란 산스크리트어 '간다르바(Gandharva)'에서 ‘건달바(乾達婆)’, ‘건달’로 변한 말이다. 간다르바는 음악을 다스리는 신으로 향만 먹고 노래와 춤을 추며 살아간다. 이것이 악사나 배우(광대)를 천시했던 우리나라의 풍습에, 그저 할 일 없이 놀고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건달이란 말로 쓰인 것이다. 

 

승려 중에 참선과 경전 공부, 포교 등 불교의 교리를 공부하는 스님을 이판(理判)승, 절의 산림(山林)을 맡아 하는 스님을 사판(事判)승이라 한다. 산림이란 절의 재산 관리를 뜻하는 말로 흔히 쓰는 ‘살림’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다.

 

 조선 시대에 와서 승려의 신분이 천민으로 격하되면서 각각의 역할도 불분명해지고,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천민이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 되고 만다. 이도 저도 아닌 자포자기에 몰린 상황을 ‘이판사판’이라는 말로도 사용하는 말이다.

 

말세(末世)도 불법이 땅에 떨어지면서 오는 악독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말하는 불교용어인데, 오늘날은 도덕 풍속 따위가 매우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즉 망해가는 세상을 비유해 사용한다. 

 

▲ 내장사 대웅전 방화로 전소되기 전 모습     © 박익희 기자

 

희비영욕의 교차, 천년고찰 

내장사는 백제 무왕 때인 636년 영은조사가 영은사로 창건한 후 조선 중종 때인 1539년에 도둑의 소굴이란 이유로 소각되는 아픔을 겪었다. 명종 때인 1557년 희묵대사가 영은사 자리에 중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 있다며, 절 이름을 내장사(內藏寺)로 명명했다.

 

 훗날 왕조실록이라는 보물이 내장산에 숨겨지게 된 것은 절 이름에 걸맞는 숙명인 듯하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내장사는 1779년 영담대사가 개축했으며, 다시 1951년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자 1958년 다천스님이 중창을 했다. 2012년 의문의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을 201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나 이번에 또다시 불타고 만 것이다. 

 

2012년 화재 때도 방화 의문설이 많았다. 내장사 대웅전은 1958년 중창 때 보천교(普天敎)의 십일전 보화문을 옮겨지었다고 한다. 한말 정읍 일대를 근거지로 한 보천교는 증산상제를 신앙한 교단으로 신도 수가 600만 명이 넘어 국교(國敎) 수준이었고, 1929년 정읍에 경복궁 근정전보다 더 큰 규모의 십일전을 비롯한 45동의 건물을 세울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후천개벽’의 교리로 민중들을 규합했으며, 천도교, 대종교 등과 같이 항일운동 자금조달과 비밀투쟁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민족종교였다. 1936년 차경석교주 사망 후 일제 탄압으로 해체되면서 십일전은 서울 조계사 대웅전과 정읍 내장사 대웅전, 전주 역사(驛舍) 등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처럼 불교와는 근본이 다른 타종교의 건물을 사용해 대웅전을 지었다는 불쾌감으로 내장사 측의 고의에 의한 방화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었다. 

 

지난 2019년 6월 22일, 정읍 내장산 야외 광장에서 ‘문화재지킴이날’ 1주년 기념식이 열렸었다.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와 문화재청이 주관하여 전국에서 활동하는 문화재지킴이 일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행사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었다. 

 

▲ 내장사 앞길 봄날 단풍나무가 싱그럽다.     © 경기데일리 사진 자료

 

왜 이런 행사를 내장사 야외마당에서 했을까? 거슬러 1592년 6월 22일. 임진왜란 전화(戰禍)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온 <왕조실록 >64괘를 민간인들이 직접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전쟁 중 380여 일 동안을 지켜냈다. 당시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 내장사의 희묵대사 등이 주축이었다. 

 

이러한 역사 속 문화재지킴이들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잇고자 6월 22일을 ‘문화재지킴이 날’로 제정해 2018년 6월,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선포식을 가진바 있다. 내장산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문화재지킴이들에게는 이처럼 우리 역사를 지켜낸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문화재지킴이날 1주년 기념식을 내장산에서 거행한 것도 이런 이유다. 

 

2015년 문화재지킴이연합회가 설립되고, 필자가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임기 동안 ‘문화재지킴이날’을 제정·선포한 것은 개인적으로 강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문화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내장산 내장사이기에 대웅전 방화사건은 전국 문화재지킴이들의 가슴에 더더욱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우리 삶의 뿌리이자 창의성의 원천이며 인류 모두의 자산이다. 문화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실천함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이어가며 다음 세대에 문화유산을 더욱 값지게 전해 주고자 한다.” 문화재는 한 나라 국민의 문화적 수준이요, 그 나라의 국격(國格)을 말해 준다고 한다.   ‘문화유산헌장’에 실린 내용으로 문화유산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대신해 본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기사입력: 2021/03/19 [11:11]  최종편집: ⓒ ggdaily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
1/19